오늘도 러셀의 <서양철학사>를 읽고 있는데(을유문화사 판이다), '가톨릭 철학' 파트의 2장 '초기 그리스도교'에서 영 미심쩍은 구절이 나왔다.

(그리스도교의 성장 원인을 설명하며) 유대인들에게서 비롯된 첫째 원인, 즉 불굴의 정신과 불관용은 포괄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오늘날에도 불관용은 선전에 유리하게 작용한다. 그리스도교도는 대부분 그들만 천국에 가고 이교도는 내세에서 형벌을 받을 것이라 믿었다. 3세기에 세인의 지지를 얻기 위해 그리스도교와 경쟁한 다른 종교들은 이런 위협적인 특징을 나타내지 않았다. 예컨대 대모신Great Mother의 숭배자들은 세례의식과 유사한 타우로볼리움Taurobolium이란 의식을 거행하고, 의식을 치르지 않은 사람들은 지옥에 갈 것이라고 가르쳤다. 타우로볼리움은 비용이 많이 드는 의식이었다. 황소 한 마리를 죽여 그 피를 개종자들에게 뿌리도록 허용했다고 한다. 이러한 종교 의식은 귀족풍의 배타성을 지니기 때문에 부자와 빈자, 자유민과 노예를 막론하고 대다수 사람들을 끌어안아야 하는 종교의 바탕이 될 수가 없다. 이러한 점에서 그리스도교는 적수로 등장한 다른 모든 종교보다 이점이 있었다.
                                                                                                                                          p.438


이 문단 앞부분에선 그리스도교가 '예수 천국 불신 지옥'이란 위협적인 특징을 나타내는 반면, 다른 경쟁 종교들은 이러한 위협적 특징을 나타내지 않았다고 했다. 그런데 바로 다음에 예로 든 '대모신' 종교는 '의식을 치르지 않으면 지옥에 갈 것'이라 가르쳤다고 했단다. 뭔 소리야? 다른 종교는 이런 위협적 특징이 없다며? 그런데 왜 이런 걸 예로 들어? 아무리 고민해도 저자의 의중을 이해할 수 없던 나는 참다 못해 구글신의 도움을 받아 러셀의 <서양철학사> 원문을 찾아냈다. 해당 원문은 다음과 같다.



긁기가 안 돼서 그림 파일로 캡처했다. 중요한 부분만 옮겨 쓰면

The worshippers of the Great Mother, for example, while they had a ceremony - the Taurobolium - which was analogous to baptism, did not teach that those who omitted it would go to hell.

이다. 그러니까 '세례와 비슷한 의식이 있었지만, 의식을 빠뜨린 자들은 지옥에 갈 것이라 가르치지 않았다' 를 '의식을 치르지 않은 사람들은 지옥에 갈 것이라고 가르쳤다' 라고 번역한 것이다!



...뭐라 할 말이 없다.

그리고 이 이야기 뒤에 '타우로볼리움이 비용이 많이 드는 의식이었다' 라는 설명으로 전환하면서, 원문에는 'It may be remarked, incidentally, ...' 라고 화제를 전환하는 연결문이 있는 반면, 번역문에서는 이러한 화제 전환 없이 막바로 비용 문제로 넘어간다. 이렇게 교리의 불관용적 측면에 대해 이야기하다 갑자기 비용 문제를 꺼내니, 글의 논리적 흐름이 끊어지고 뜬금없이 넘어간다는 느낌도 든다.


마음 같아선 내가 그 동안 읽었던 부분 전부를 원문과 비교해 보고 싶지만, 워낙 분량이 많아 엄두가 나질 않는다. 그저 오역이 이것 하나뿐이었기를 빌 수밖에 -_-


* 2010. 10. 29. 추가 -

문제의 부분 좀 뒤에는 이런 글이 나온다.

니케아 공의회(325)는 압도적 다수의 지지로 아리우스의 교리를 이단으로 판결했다. 그러나 여러 신학자들이 각양각색으로 변형한 아리우스주의가 등장하여 황제들의 지지를 얻어냈다. 알렉산드리아의 주교였던 아타나시우스는 니케아 공의회의 정통 교리를 지키겠다는 종교적 열의 탓에 328년부터 죽을 때까지 내내 유형 생활을 했다. 아타나시우스가 대중의 인기를 한 몸에 받은 이집트에서는 논쟁이 벌어지는 동안 내내 흔들리지 않고 아리우스주의를 지지했다. 신학 논쟁이 벌어지는 과정에서 로마의 정복 이후 근절된 것처럼 보였던 민족적인 (또는 적어도 지역적인) 감정이 부활한 사실은 호기심을 자아낸다. 콘스탄티노플과 아시아는 아리우스주의로 기울었으나, 이집트는 아타니시우스에 열광했다. 서로마 제국은 확고부동하게 니케아 공의회 신경을 고수했다.
                                                                                                                               pp.441-442

보면, 아타나시우스는 니케아 공의회의 정통 교리를 따랐다고, 즉 아리우스의 교리를 이단으로 보았다고 한다. 그런데 이 아타나시우스가 이집트에서 대중의 지지를 받았다고 했으면서, 이와는 모순되게 '이집트는 아리우스주의를 지지했다'고 썼다. 그래 놓고 또 뒤에는 '이집트는 아타나시우스에 열광했다'고 써 놨다. 그래서 도대체 이집트가 아리우스 편이라는 거야, 아니면 아타나시우스 편이란 거야? 나는 또다시 원문을 찾았다.



문제의 문장은 이거다.

He had immense popularity in Egypt, which, throughout the controversy, followed him unwaveringly.

즉 원문은 '그(아타나시우스)는 이집트에서 매우 큰 인기를 얻었으며, 또한 이집트는 논쟁 내내 확고히 그(아타나시우스)를 추종했다.' 가 된다. 결국 번역문 앞의 '이집트가 아리우스주의를 지지했다'는 건 헛소리고, 대명사 him 이 뭘 가리키는지 잘못 짚은 오역이란 소리다.

...정말 언젠가 날 잡아서 하나하나 원문과 꼼꼼히 비교 대조해 보고 싶다. 가뜩이나 어려운 내용인데, 이렇게 사람 헷갈리게 만드는 오역이 있어서야 원...


* 2010. 10. 30. 추가 -

전에 읽었던 앞부분을 훑어보다 또 하나 걸려들었다. 점입가경 이번 건 좀 사소한 거긴 하지만... '고대 철학' 파트의 '아리스토텔레스 형이상학'에서, 플라톤의 이상 이론(이데아 이론)을 반박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제3인간' 논증을 설명하는 부분이다.

만약 한 인간이 이상적인 인간과 유사하기 때문에 인간이라면, 보통 사람들과 이상적인 인간을 유사하게 만드는 한층 더 이상적인 인간이 존재해야만 한다. 다시 말해 소크라테스는 인간이면서 동시에 동물인데, 이상적인 인간이 이상적인 동물인가 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만약 이상적인 인간이 이상적인 동물이라면, 동물들의 종만큼 많은 이상적인 동물들이 존재해야 한다는 말이다.
                                                                                                                              p.236

전에 이 구절을 읽을 때, 솔직히 나는 이 논증을 이해할 수 없었다. '보통 사람들과 이상적인 인간을 유사하게 만드는 한층 더 이상적인 인간이 존재해야 한다' 까지는 이해가 됐다. 그런데 이걸 어떻게 다시 말하면 '이상적인 인간이 이상적인 동물인가 하는 문제가 발생한다'가 되는 거지? 앞의 명제에서 어떻게 뒤의 명제가 유도되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그때는 내 머리가 멍청하기 때문이라 생각하고 넘어갔었는데, 이제는 모든 문장을 의심의 눈초리로 검토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보다시피, 위의 '다시 말해'에 해당하는 접속사는 'Again'이다. 나는 사전을 찾아보았다.

again ... 5. 게다가 또(besides) 6. [보통 and, and then, but then 뒤에서] 또 한편, 반면에(on the other hand)

물론 '다시'라는 뜻도 있지만, '게다가', '한편' 같은 다른 뜻도 있다(솔직히 나도 사전 찾기 전엔 이런 뜻이 있는 줄 몰랐다 -_-). 'Again'이란 단어만 달랑 생각하면 '다시 말해'라고 번역할 수도 있겠지만, 앞뒤 문장의 논리적 흐름을 고려하면 '한편'이라고 번역하는 것이 자연스럽지 않을까 싶다. 이렇게 '다시 말해'를 '한편'으로 바꾸면 앞뒤의 두 문장은 각기 독립적인 논증이 되고, 두 논증을 따로따로 나누어 생각하면 논리적으로 깔끔하게 맞아 떨어진다. (*추가 - 나중에 다시 생각해 보니 '한편'보다는 '게다가'가 어울릴 듯도 하다.)

지금까지 찾아낸 오역들을 보면, 역자가 글의 논리적 흐름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것 같다. 셋 다 차근차근 읽어 보면 논리적으로 전혀 이어지지 않는 문장들이다. 나처럼 '원래 내용이 어려워서 내가 이해하지 못한 거겠지' 하고 스리슬쩍 넘어간 독자가 꽤 많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나를 화나게 한 건 미스테이크였다


* 추가 - <서양철학사>를 다 읽은 후, 발견한 오역을 정리한 글을 여기에 썼으니 참조.

Posted by 크리스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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