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이 69인 이유는 1969년을 배경으로 하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그냥 그렇다고요... -_-)


대학교 2학년인가 3학년 때 읽은 책인데, 읽고서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이걸 고등학교 때 읽었으면 재미있었을 텐데' 였다. (...)

우리 동네가 비평준화 지역이라 다른 곳과 달리 고등학교를 시험 치고 들어가고
  - 내 친구 중 시험을 망쳐서 속칭 '꼴통 학교'라 불리는 고등학교에 간 녀석도 있다.
     다행히 대학은 좋은 곳으로 갔지만. -
덕분에 우리는 입시 제도의 문제점을 중학교 졸업부터 몸으로 체험한 데다가, 나는 (내 자랑 같지만) 지역에서 나름 좋다는 공립고에 진학했는데 이놈의 학교가 좋은 학교랍시고 야간자율학습으로 가둬 놓는 것은 기본이요, 두발 단속도 지독하고

- 어떤 선생님이 수업하는 중인데 교장 선생님이 갑자기 교실을 습격해서 애들 머리를 쥐어뜯는 일도 있었다. -

교복 상의는 바지 속에 집어넣어야 하고

 - 이게 짜증났다. 당시 우리 생각으론 윗도리를 바지 속에 넣어 입으면 간지도 안 나고 불편하다고 느꼈기 때문. 나는 자습 시간에 윗도리 빼 입고 있다가 갑자기 교실을 습격하신 교감 선생님에게 끌려가 면담받은 적도 있다. -


그야말로 열혈 청춘 시절의 젊은 학생들에게는


 
부조리

의 온상, 썩은 사회의 축소판처럼 느껴지던 학교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사소한 거라고도 할 수 있는 것들인데 그 때는 그렇게 느껴지지 않았다.


이런 환경에서 아나키스트를 동경하는 반체제적인 학생들이 취할 수 있는 수단은 <인간 불평등 기원론>, <공산당 선언>, <자유론>, <정의론> 등 고금의 명저를 섭렵하며, 야자 시간을 틈타 혁명을 논의하고 교육 제도를 비판하는 대자보를 만들어 붙이는 게 고작이었다, 라고 하면 거짓말이고, 용기가 부족한 학생들은 소극적인 행동으로 저항을 표현할 뿐이었다.


예를 들면 야자 시간에 창문을 열고 넓은 하늘에 홀로 떠 있는 을 구경하며 자유를 갈망한다든지,

또는 야자 시간에 무라카미 하루키를 읽는다든가 하는 소극적인 학습 거부의 표현을 하거나,


좀 과격한 경우 교장 선생님 차(아직도 기억난다. 다이너스티였다.)가래침을 뱉는다든가,

눈 오는 날 교감 선생님 차 문 열쇠구멍에 눈 뭉치를 쑤셔박아 열쇠구멍을 얼음으로 막아버린다든가,

야자로 찌든 어두운 얼굴에서 피어나는 콧기름으로 창문에 교복 규율에 반대하는 글을 적는다든가,

학생주임 구두에 아이스크림을 집어넣는다든가(이건 내가 한 건 아니다 -_- 야자 시간에 학생주임이

방송으로 누가 내 구두에 아이스크림 넣었냐며 폭주하는 바람에 전교생이 알게 되었다)하는,

지금 생각해 보면 골 때리는 추억들이다.


<69>의 주인공은 고등학생으로서 야밤에 학교 옥상을 바리케이드로 봉쇄하고 플래카드를 걸고, 학교 건물에 스프레이로 낙서를 하는 혁명을 감행한다. 표면적인 이유는 1969년 당시 일본의 학생 운동, 베트남 전쟁에 반대하는 반전 운동 등에 대한 동조, 학교와 교육 체제에 대한 저항이라고 할 수 있젰지만, 본질적인 이유는 여학생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이다.

소설에서는 1969년의 저항적 사회 분위기 속에서 나름의 방식으로 사회에 반항하며 연애도 하는 고등학생(작가 자신의 과거의 회상이기도 하다)들의 모습을 보여주며 마음에 들지 않는 사회에 저항하는 독특한 무기를 보여준다. 이들의 무기는 해학이다.


'유일한 복수 방법은 그들보다 즐겁게 사는 것이다. ...지겨운 사람들에게 나의 웃음소리를 들려주기 위한 싸움을, 나는 죽을 때까지 결코 멈추지 않을 것이다.'     - 지은이의 말 中 -


자유와 평등, 계급 투쟁, 이념 대립 등등 하는 것들도 이러한 수단 앞에서는 아무래도 상관없는 것이 되어 버린다.


'크리스마스 이브와 VAN 스웨터와 맥그리거 코트 그리고 아기사슴 같은 눈동자를 가진 여자친구와의 작은 여행. 모든 사람들이 이때의 내 기분을 공유할 수 있다면, 이 세상의 모순이라는 모순은 모두 사라지고 말 것이다. 전쟁조차 사라질 것이다. 부드러운 미소만이 유일한 질서가 될 것이다.'


읽기 쉽고 정말 재미있는 소설이다. 가벼우면서 괜찮은 책을 읽고 싶은 분에게 추천할 만한 책.


명대사 - "똥이 마려워요."

Posted by 크리스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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