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스에서 말하는 전술(Tactics)이란, 흔히 말하는 '묘수 찾기'라고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위키피디아의 정의를 보면, 전술은 '상대가 대응할 수 있는 수를 제한하여 직접적인 이득을 취하는 수'라고 되어 있군요. 또한 전술의 기본은 '상대가 여러 공격에 전부 대응하지 못하도록 하여 이익을 얻는 것'이라고 합니다. 말이 복잡해 보이지만 그닥 거창한 건 아닙니다(...) 전술의 예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습니다.

1. 포크(Fork)
하나의 말로 두 개 이상의 말을 동시에 공격하는 것을 '포크'라고 합니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습니다.


백 나이트는 흑 퀸과 룩을 동시에 공격하고 있습니다. 흑 킹으로 백 나이트를 잡으려니 백 비숍이 나이트를 보호해 주고 있군요. 이렇게 되면 한 번에 하나의 말만 움직일 수 있는 체스의 규칙상 퀸과 룩 둘 중 하나는 포기해야 하고 - 이런 경우 퀸을 살리고 룩을 포기해야겠죠 - 따라서 백은 룩을 잡아 이익을 보게 됩니다.

포크는 독특한 행마법을 가진 나이트로 만들어지는 경우가 많지만, 다른 기물로도 가능합니다.

위 그림에서 백은 폰으로 비숍과 나이트를 동시에 공격합니다.

포크에 걸리더라도 빠져나올 방법이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포크당한 말 중 하나를 움직여 상대를 공격하는 것입니다.
위와 같은 경우, 다행히 흑은 ...Bb4+로 비숍을 피하며 체크를 하고, 백이 체크를 막으면 나이트를 도망쳐 말들을 살릴 수 있습니다.

2. 핀(Pin)과 스큐어(Skewer)
핀과 스큐어는 비숍, 룩 등으로 일직선상에 놓여 있는 상대의 말들을 공격하는 것입니다. 뒤에 있는 기물의 가치가 크면 핀, 앞에 있는 기물의 가치가 크면 스큐어라고 합니다.

b5의 백 비숍은 대각선상에 놓인 흑 나이트와 킹을 공격하고 있습니다. 이런 경우 c6의 흑 나이트가 핀에 걸려 있다고 하며, 흑 나이트는 움직이면 뒤의 킹이 공격받게 되기 때문에 꼼짝할 수 없습니다. 백으로서는 이를 이용하여 d4 후 d5로 폰을 전진시키면, 나이트는 도망치지 못하고 얄짤없이 폰에게 잡히게 되겠죠.


백은 비숍으로 흑 퀸과 룩에 스큐어를 걸었습니다. 흑이 퀸을 피하면 룩이 잡히게 되죠. 스큐어는 포크와 비슷하게 두 개의 말을 동시에 공격하는 것이라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3. 디스커버드 어택(Discovered Attack)
어떤 말의 앞을 가로막고 있던 말이 비키면서 뒤에 있던 말이 상대에게 공격을 가하는 것을 디스커버드 어택이라 합니다. 이를 응용하면 동시에 두 곳을 공격할 수 있기에 강력한 무기가 됩니다. 예를 보여 드리겠습니다.

d4에 있어 비숍의 길을 막고 있던 백 나이트가 이동하면서 룩을 공격합니다. 동시에 가려져 있던 비숍의 공격 경로도 열려 비숍이 퀸을 공격하게 되었군요. 이렇게 백은 흑 퀸과 룩을 동시에 공격하여 둘 중 하나를 잡게 됩니다.

디스커버드 어택의 응용으로 디스커버드 체크(Discovered Check)와 더블 체크(Double Check)가 있습니다. 디스커버드 체크는 말 그대로 비키면서 체크를 하는 것입니다.

흑은 d6의 나이트를 비키면서 퀸을 공격하고, 동시에 룩으로 체크를 가했습니다. 이러면 백은 킹을 피해야 하고, 흑은 공짜로 퀸을 따내게 되지요. 디스커버드 어택의 위력을 보여 주는 예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더블 체크는 두 개의 말로 동시에 체크를 가하는 것입니다.

흑 나이트가 비키면서 룩과 나이트가 동시에 체크를 가합니다. 예전에 설명드렸듯이 체크를 당하면 체크한 말을 잡거나, 막거나, 피하거나 세 가지 중 하나를 해야 하는데, 더블 체크의 경우 동시에 두 말을 잡거나 막을 수 없기 때문에 체크에서 벗어나려면 킹이 피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이 경우 킹이 피할 곳이 없으므로 체크메이트가 됩니다. 이처럼 더블 체크를 하면 상대는 킹을 피하는 것 외에 선택지가 없으므로, 잘 이용하면 체크메이트를 쉽게 만들 수 있습니다.

4. 올가미
이건 제가 어릴 때 본 체스책에 나온 건데, 위키피디아에서 찾으려니 이걸 영어 용어로 뭐라 하는지 몰라서 못 찾겠네요(...) 뭐냐면 말 그대로 상대 말을 가둬서 잡는 겁니다. 쉽게 말해 상대 말을 체크메이트(...)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백 퀸은 흑 룩의 공격을 받았는데, 어디로 도망치건 흑의 말들에게 잡히게 됩니다. 그나마 나은 수는 가장 가치가 높은 룩을 잡고 죽는 거겠죠. 이렇게 퀸이 상대 진영 깊숙이 들어갔다가 갇혀서 비명횡사하는 경우가 종종 있으니 조심해야 합니다.


흑 나이트가 백 킹을 피해 구석으로 도망쳤습니다. 백은 Rxb5로 폰을 잡을 수도 있겠지만, 그러면 흑도 ...Nxa2로 응수하겠죠. 백은 Ra7!로 폰을 보호합니다. 그러면 흑 나이트는 갈 곳이 없고, 이후 백이 Kd2를 두면 나이트는 폰을 잡고 죽는 수밖에 도리가 없습니다.

5. 희생(Sacrifice)
이름 그대로, 기물을 희생함으로써 다른 이익을 노리는 것입니다. 대표적으로 기물을 희생하고 체크메이트의 기회를 만들어 내는 것이 있습니다.

<Anderssen-Kieseritsky, 1851>
백 차례입니다. 비숍이 c7이나 e7로 들어가면 메이트가 되겠는데, 흑 나이트들이 막고 있군요. 이 상황에서 백은 퀸을 희생하여 메이트를 만들어냅니다. Qf6+!을 두면 흑은 체크를 막기 위해 ...Nxf6으로 퀸을 잡아야 합니다. 퀸이 공짜라고 좋아할 일이 아닙니다(...) 백은 Be7#로 게임을 끝냅니다.



위와 같이 체크메이트를 만들기 위한 희생도 있고, 상대의 기물을 잡기 위하여 살을 주고 뼈를 치는(...) 희생도 있습니다. 때로는 가시적이고 직접적인 이득이 없더라도, 상대의 진영을 무너뜨리거나 상대의 움직임을 늦추기 위해 희생을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전에 보았던, 중앙을 확보하기 위해 폰 하나를 내 주는 Queen's Gambit 오프닝이 한 가지 예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6. 디플렉션(Deflection)
어떤 말이나 지점을 방어하는 말을 쫓아내는 것을 말합니다. 어떤 말을 공격하려 하는데 상대의 다른 말이 목표를 보호하고 있을 경우, 이 말을 다른 곳으로 벗어나도록 하여 목표의 방어를 약화시키는 것입니다.

흑 차례입니다. 뭔가 보이시나요? 흑이 ...Nf3+을 하면 킹과 퀸에 포크를 걸어 퀸을 따낼 수 있겠군요. 하지만 d4의 백 나이트가 f3을 지키고 있어 f3으로 들어온 흑 나이트를 잡아버릴 것입니다. 이 백 나이트만 쫓아내면 만사 형통입니다. 이렇게 d4의 백 나이트를 쫓아내야겠다는 아이디어만 떠올릴 수 있다면 나머지는 간단합니다. ...c5!로 나이트를 공격하면 나이트는 어디론가 도망쳐야 하고, 그러면 꿈꾸던 ...Nf3+을 둘 수 있습니다. 물론 상대가 ...Nf3+을 읽었다면 킹이나 퀸을 미리 피하겠지만, 그러면 ..cxd4로 나이트를 공짜로 따내 흑이 이득인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비슷한 원리의 다른 예를 봅시다.

백 차례입니다. a3의 백 룩은 a4의 흑 나이트를 공격하고 있지만, b5의 폰이 나이트를 보호하고 있습니다. 백은 Bxb5!로 나이트를 보호하는 폰을 없앱니다. 흑은 ...Rxb5로 비숍을 잡겠지만, 백은 Rxa4로 나이트를 잡을 것입니다. 결국 비숍을 내 주고 나이트와 폰을 잡았으니, 백이 폰 하나 이득입니다. 사소한 이득이지만, 티끌 모아 태산입니다(...)


백 차례입니다. 흑 퀸이 흑 룩의 보호를 받으며 백의 진영 깊이 들어와 있습니다. 만일 백이 흑 룩의 보호를 차단할 수 있으면, 흑 퀸을 공짜로 잡을 수 있을 겁니다. 이런 전술을 떠올린 백은 Nd6+!으로 실행에 옮깁니다. 만일 흑이 폰이나 비숍으로 나이트를 잡으면 퀸을 보호하던 룩의 길목이 막히고, 백은 Qxd2로 간단히 퀸을 잡을 수 있습니다. 흑이 그나마 손실을 최소화하는 방법은 ...Rxd6입니다. 그러면 백은 exd6으로 룩을 잡고, 흑은 퀸을 도망칩니다. 백은 결국 나이트를 내 주고 룩을 잡았으니 이익이지요.

7. 디코이(Decoy)
미끼를 던져 상대의 말을 위험한 지점으로 유인하는 것입니다. 예를 보겠습니다.

흑 차례입니다. 흑은 '만일 퀸이 c4에 있다면 Na3+로 킹과 퀸에 포크를 걸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고, 과감한 희생을 계획합니다. 우선 ...Rxc4 Qxc4를 두어 퀸을 c4로 유인합니다.. 그리고 a3을 지키고 있는 b2의 폰을 없애기 위해 ...Qxb2+ Rxb2를 둔 후, 바라던 ...Na3+을 둡니다.

백은 Kc1이나 Ka1으로 피할 수밖에 없습니다. 킹이 피한 후 흑은 퀸을 바로 잡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b2의 백 룩도 잡을 수 있는 상황인데 퀸을 먼저 잡으면 이 룩이 도망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흑은 ...Bxb2+ Kxb2로 룩을 잡습니다. 이것은 또한 킹을 b2로 유인하는 수이기도 합니다. 이제 흑은 Nxc4+로 퀸을 잡는 동시에 b2로 유인된 백 킹에 체크를 치고, 킹이 피하면 ...Rxe4로 백 비숍까지 잡아냅니다.

최종 결과입니다. 뭔가 복잡한 일이 벌어졌지만, 흑이 얻은 이익은 폰 두 개 뿐입니다(...) 하지만 역시 티끌 모아 태산입니다. 말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이니, 여분의 폰을 가진 흑은 이후 폰 승진 경쟁에서 우위를 점할 것입니다.


이와 같은 기술들을 조합하여 전술로써 상대를 공격하는 수들을 컴비네이션(Combination)이라고 부릅니다. 위에서 예로 든 것들 말고도 전술적 아이디어는 무궁무진합니다. 여러분은 체스판을 보고 자유롭게 생각하며 묘수를 찾아내면 됩니다. 좋은 예를 하나 보여 드리겠습니다. (Jeremy Silman, <How To Reassess Your Chess>, pp.47-50을 참고했습니다)

<Alekhine-Junge, 1942>
백 차례입니다. 과연 어떤 수를 두면 좋을까요? 답은 Bxf7+!!로 비숍을 희생하는 것입니다.



만일 흑이 ...Kh8로 피하면 Qf6#으로 메이트되고, Kxf7로 비숍을 잡으면 백은 Qxh7+로 킹과 퀸에 스큐어를 걸어 퀸을 공짜로 따냅니다. ...Rxf7이면 Qg5+로 체크를 친 후 Rxd8로 룩을 따냅니다. 남은 건 ...Qxf7 뿐인데, 그러면 백은 Rxd8!로 응수합니다.


d8의 흑 룩을 보호하던 흑 퀸이 이동한 것을 이용한 것입니다. 만일 흑이 ...Rxd8을 하면 백은 Qg5+로 킹과 룩에 포크를 걸어 룩을 따내고, Qxd8+에 이어 Qxb6으로 나이트까지 잡을 것입니다. 이제 흑은 당장 공격받는 나이트를 피해야 하고, 백은 기물 우세를 바탕으로 Raa8 또는 Rad1과 R1d7 등으로 흑을 압박할 것입니다.


이러한 컴비네이션을 읽어내려면 한참 동안 머리를 굴려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매 수를 둘 때마다 이런 묘수가 있는지 일일이 찾아보는 건 인간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지요. 앞서 인용한 Jeremy Silman에 따르면, 매 수마다 컴비네이션을 찾아내려 하지 말고, '제대로 보호받지 않는 기물이 있는가 찾아보라'고 합니다. 상대의 모든 말들이 잘 보호되어 있다면 컴비네이션을 찾으려 하는 것은 헛수고니까 포기하고, 만일 제대로 보호받지 않는 말이 있을 경우에만 그것을 이용한 컴비네이션이 있는지 생각해 보라는 것입니다. 또한 '이중 공격(double attack)', 즉 한 번의 수로 두 가지 공격을 할 수 있는 수를 찾아보는 것도 컴비네이션의 기초입니다. 위의 예에서 백은 흑 킹의 방어가 허술하고, 흑 퀸이 보호받고 있지 않다는 것, 그리고 Qg5+를 통한 킹과 룩에의 이중공격을 활용한 컴비네이션을 구사한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이러한 전술적인 플레이가 체스를 재미있게 해 준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기발한 묘수를 생각해내 간지나는(...) 공격을 구사하는 것이 체스의 묘미가 아닐까 합니다. 고수가 되려면 오프닝이나 포지션에 관한 이론도 중요하긴 하지만, 취미 수준으로 체스를 하는데 쪼잔하게(...) 오프닝따위을 외운다거나 난해한 포지셔널 플레이에 집착하는 건 게임을 수동적으로 플레이하게 만들어 체스에 흥미를 잃게 한다는 생각입니다. 이러한 전술은 체스 이론을 잘 몰라도 할 수 있는 것들이니, 초보자 분들도 이런 묘수를 찾는 재미로 체스를 두면 게임을 즐겁게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네요.

하는 김에 한 가지 더. 여러분이 상대의 전술에 당해서 발리는(...) 상황을 겪을 수도 있는데,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둬 보세요. 다음은 제가 예전에 뒀던 게임입니다.

제가 흑이었습니다. 저는 화려한(...) 전술을 구사하여 상대의 진영을 탈탈 털고 위와 같은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저는 ...Rf1??을 두었고, 상대는 즉시 Qxg7#로 답했습니다.




The winner of the game is the player who makes the next-to-last mistake.
체스의 승자는 끝에서 두 번째로 실수를 하는 사람이다.                                                       - Tartakower


...이런 사태가 벌어질 수 있으므로, 전술을 쓰는 쪽은 상대의 예상치 못한 수에 당하지 않도록 수읽기를 조심해야 하고, 불리한 쪽은 포기하지 말고 참으면서 반격의 기회를 기다려 최후의 한방을 노려야 합니다. 사실 불리한 쪽이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다는 마음가짐으로 임하면, 유리한 쪽은 다 이긴 게임을 말아먹지 않으려고 잔뜩 긴장해 있는 상태기 때문에 심리적으로 밀리게 됩니다. 그러니까 불리한 상황이라면 '에라 모르겠다 너 죽고 나 죽자' 하는 마음으로 각성불타올라 반격하는 것도 좋습니다(...)


P.S. 이로써 체스 관련 글 수가 독서 감상 글 수를 넘어섰군요. 점점 산으로 가는 블로그(...)

Posted by 크리스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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