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스의 진행은 크게 세 단계로 나뉩니다. 초반에 서로의 말들을 좋은 위치에 전진시키며 진형을 구축하는 오프닝(Opening), 중반으로 접어들어 신나게 치고받고 싸우는 미들게임(Middlegame), 큰 전투가 끝나고 적은 수의 말들만 남은 엔드게임(Endgame)으로 나뉩니다. 이번에는 엔드게임에서 적은 수의 말들을 갖고 상대의 킹을 메이트시키는 방법과, 엔드게임에서의 폰 승진에 관한 아주아주 기초적인 내용을 설명하겠습니다.
엔드게임에 대한 공부는 사실 재미없고 지루한 데다 쓰잘데없는(...) 것 같은 내용들입니다. 게임들 중에는 엔드게임까지 진행되지도 않고, 미들게임에서 체크메이트가 터지거나 승패가 기울어지는 결정적인 수들이 나오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미들게임에서 잘 하면 엔드게임에서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저도 그렇습니다 -_-). 그러나 결정적인 순간에 엔드게임을 모르면, 다 이긴 게임을 비기거나, 무승부로 만들 수 있는 게임을 지거나 하는 사태가 발생합니다. 예를 들어 나는 킹과 룩이 있고, 상대는 킹만 남았는데 이 상황에서 체크메이트를 만드는 법을 몰라서 우왕좌왕 버벅이다 비겨 버리면 분통이 터지겠죠? 이런 변고가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엔드게임에 대한 지식은 필요합니다. 말은 이렇게 하지만, 저도 아는 게 별로 없는 만큼(...) 초보자들이 꼭 알아야 하면서도 쉬운 수준의 엔드게임에 대해 설명하겠습니다.
1. 킹 + 퀸 vs. 킹 엔드게임
킹과 퀸으로 체크메이트를 만드는 방법은 여러 가지 있지만, 대표적인 것이 이겁니다. 간단한 원리는, 퀸을 이용하여 상대 킹을 가두어 구석으로 점점 조여가고, 킹이 상대 킹 근처에 접근한 후 퀸을 붙여 끝내는 것입니다. 예를 보여드리죠. 다음과 같은 상황에서 시작하겠습니다.
1...Qg5
상대 킹을 a5-g5-g1-a1의 직사각형 내에 가둡니다. 상대의 움직임에 따라 이 사각형을 점점 조여가는 것입니다.
2. Kc4 Ke3
3. Kb3 Qc5
사각형을 더욱 조였습니다.
4. Kb2 Qc4
5. Kb1 Kd2
사각형을 조이면서 킹을 접근시킵니다. 퀸만 갖고는 체크메이트가 불가능하니, 킹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6. Kb2 Qc3+
킹의 보호를 받으며 상대 킹에게 접근해 체크를 칩니다.
7. Ka2
여기서 옳다꾸나 하고 ...Kc1??을 두면 스테일메이트가 됩니다. 퀸 엔드게임에서는 퀸이 너무 강하다 보니(...) 스테일메이트가 터지는 경우가 있는데, 공격하면서 상대의 퇴로를 항상 확인해서 스테일메이트를 피해야 합니다.
7...Qb4
킹의 공간을 a1, a2의 두 칸으로 제한합니다.
8. Ka1 Kc2
9. Ka2 Qb2# 0-1
위와 같은 상황에서 여러 방법으로 체크메이트가 가능합니다. 제가 예로 든 것보다 더 빠르게 체크메이트를 만드는 경로도 있을 수 있는데... 어쨌든 50수 안으로만 체크메이트를 만들면 되므로(...) 스테일메이트만 주의하면 별 어려움이 없습니다. 퀸으로 스테일메이트가 나오는 경우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습니다.
이런 상황만 조심하시면 됩니다.
2. 킹 + 룩 vs. 킹 엔드게임
이런 형태가 나오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상대 킹을 구석 줄에 몰아넣고, 내 킹이 상대 킹과 일직선상에 있도록 붙여 구석 줄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게 한 상태에서 룩으로 체크를 가하는 것입니다. 퀸의 경우에는 대충 해도 어떻게든 체크메이트가 나오지만(...) 룩의 경우는 모르면 좀 어렵습니다.
1. Rh5+
킹이 도망칠 수 있는 곳 중 아래 세 지점은 백 킹이 막고 있으므로 위로 올라갈 수밖에 없습니다.
1...Kd6
2. Kd4
상대 킹을 쫓아가 타이밍을 봐서 룩을 한 칸 올려 다시 킹을 위로 한 칸 밀어내려는 것입니다.
2...Ke6
3. Ke4 Kf6
4. Kf4 Kg6
5. Ra5
만일 이렇게 상대 킹이 룩을 공격하면 저 멀리 반대편으로 도망갑니다.
5...Kh6
6. Kg4 Kg6
구석까지 몰린 상대는 결국 내 킹과 마주보게 됩니다.
7. Ra6+
다시 킹을 한 칸 위로 밀어냅니다.
7...Kf7
8. Kf5
다시 쫓아가고... 이걸 계속 반복하는 겁니다.
8...Kg7
9. Kg5 Kh7
10. Ra7+ Kg8
11. Kf6 Kh8
12. Kg6 Kg8
13. Ra8# 1-0
이렇게 룩으로 상대 킹이 한 가로줄 또는 세로줄을 지나지 못하도록 차단한 후, 상대 킹과 내 킹을 같은 직선상에 맞추고 룩을 한 칸 밀어 상대 킹을 점점 구석으로 몰아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비숍 두 개로 체크메이트 만들기, 비숍 + 나이트로 체크메이트 만들기 등도 있는데... 저도 잘 모르기 때문에 -_- 다루지 않겠습니다. 사실 비숍 두 개나 비숍+나이트만 남은 상황은 저도 겪어 본 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나이트 두 개로도 체크메이트를 만들 수도 있는데, 이건 상대 킹의 협조가 있어야(...) 가능하다고 합니다. 상대가 일부러 체크메이트되는 곳으로 들어가 줘야 한답니다.)
3. 킹 + 폰 vs. 킹 엔드게임
폰 엔드게임의 경우, 킹과 폰의 위치에 따라 다양한 양상이 나타납니다. 상황에 따라 폰이 승진하여 퀸 엔드게임으로 가기도 하고, 폰을 승진시킬 수가 없어 비기는 경우도 있습니다. 간단한 경우만 보여드리겠습니다.
제가 전에 이 그림을 보여드리면서 '이건 비기는데,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고 했었죠. 예를 들어 백 차례라고 합시다.
1. Kd6 Kd8
만일 ...Kf8?? 같은 수를 두면 Kd7 후 백 폰의 전진을 막을 수 없습니다. 흑 킹이 e8로 가야 폰을 막을 수있는데 백 킹이 흑 킹의 접근을 막고 있기 때문입니다.
2. e7+ Ke8
자, 여기서 백 킹이 Ke6으로 움직이면 스테일메이트가 되고, 다른 곳으로 움직이면 흑 킹에 폰이 잡힙니다. 뭔 수를 두건 비기게 되죠.
흑 차례라면?
1...Ke7
만일 ...Kd8 같은 수를 뒀다간 Kf6 Ke8 e7 Kd7 Kf7로 폰이 승진합니다.
2. Kd5
뒤로 물러나면 흑 킹이 폰을 잡을 것이고... 갈 곳은 좌우 둘 중 하나밖에 없습니다.
2...Ke8
백이 Ke5를 두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고, Kd6을 두면 백 차례인 경우에 다룬 것과 똑같이 되어 결국 비깁니다.
그런데 반대로 킹이 앞에 있고 폰이 뒤에 있다면 어떻게 될까요?
우선 백 차례를 분석해 봅시다.
1. Kd6 Kd8
2. e6 Ke8
3. e7
위에서는 이 상황에서 백 차례였기 때문에 비겼지만, 이번에는 흑 차례이기 때문에 흑은 움직여야만 하고, 어쩔 수 없이 지켜야 할 e8 지점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일종의 악수강요죠.
3,.. Kf7
4. Kd7
이제 흑이 뭔 수를 두건 백은 다음 수에 e8=Q로 폰을 승진시킬 것이고, 그러면 퀸 엔드게임으로 들어가 이깁니다.
흑 차례라면 더 간단합니다.
1...Kd8
2, Kf7
흑은 어디로든 움직여야 하고, 앞서와 마찬가지로 e8 지점을 벗어나야 합니다. 그러면 백 킹은 흑 킹의 반대 방향으로 침투하여 e8 지점을 쥐게 되지요. 이제 흑이 뭔 짓을 하든 간에 백은 닥치고 폰만 전진하면 됩니다.
일반적으로, 폰을 승진시키려는 쪽은 킹을 폰 앞으로 보내고, 폰이 승진하기 위한 지점(위의 경우 e8)을 미리 확보해 놓고 폰을 영접(...)해야 합니다. 반대로 승진을 막는 쪽은 상대 킹이 승진 지점에 다가오지 못하도록 목숨 걸고 지켜야 합니다.
이러한 폰 엔드게임은 다양한 경우에 대하여 깊이 분석, 연구되어 있습니다. 저는 간단한 예를 보여드리고 일반론적인 설명만을 드렸는데, 깊은 내용을 공부하시고자 하는 분은 위키피디아의 'King and pawn versus king endgame' 을 보시길 권합니다. 영어라서 짜증난다구요? 한국은 체스를 즐기는 사람이 많지 않고, 그러다 보니 한국어로 번역된 체스 서적도 거의 없다시피합니다. 그래서 체스를 깊이 공부하려면 외국 사이트나 영어 서적을 뒤져야 합니다. 이 글을 읽고 계시는 학생 여러분, 영어 공부 열심히 하세요(...)
보너스로, 그랜드마스터 리처드 레티(Richard Réti)가 연구한 신기한(...) 엔드게임을 보여 드리겠습니다.
백이 둘 차례입니다. 백 폰이 두 칸만 움직이면 승진하긴 하는데, 바로 옆에 흑 킹이 있어서 금방 폰을 따라잡아서 승진하기 전에 죽여버릴 수 있습니다. 반면 흑 폰은 백 킹보다 두 칸이나 앞서 있어 백이 승진을 막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 상황에서 백이 비길 수 있습니다! 해답은 다음과 같습니다.
그리고 이 글부터 본격적으로 기보를 사용했는데, 익숙하지 않으시다면 컴퓨터 옆에 체스판을 갖다놓고 직접 두시면서 보는 것도 좋고, 아니면 컴퓨터 체스 프로그램을 열어서 둬 보시는 것도 좋습니다.
P.S. 한밤중에 술이 들어간 상태에서 쓴 거라 틀린 부분이 있을 듯합니다(...) 지적할 것 있으면 댓글 달아 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