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스를 더 잘 두고 싶은 욕심이 있는 분이라면 체스에 관한 여러가지 글을 찾아보고 싶으실 겁니다. 그런데 이런 글의 대부분은, 그림은 별로 없고 체스 말의 움직임을 전부 '기보'라는 글 형식으로 표기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글에서 설명하는 체스판의 상황과 말들의 움직임을 이해하려면 기보를 보는 방법을 알아야 합니다. 체스를 공부하기 위한 첫번째 관문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가장 많이 쓰이는 표기법인 'Algebraic notation'을 설명하겠습니다. 다른 표기법도 있다는데, 저는 지금까지 다른 표기법으로 쓰인 글을 한 번도 못 봤습니다 -_- 이것만 아시면 됩니다.

우선 체스판의 64개 지점을 두 개의 문자로 표현합니다.


백의 입장에서 맨 왼쪽의 세로줄(파일file이라 합니다)부터 차례로 a, b, c... h라는 글자를 매깁니다. 그리고 맨 아래 가로줄(랭크rank라고 합니다)부터는 차례로 1, 2, 3... 8이라고 숫자를 매깁니다. 그리고 각각의 지점(스퀘어square라고 합니다)을 세로줄의 문자와 가로줄의 숫자, 2개의 글자로 표현하는 겁니다. 예를 들어 g파일과 5랭크가 만나는, 그림의 화살표로 표기된 지점은 g5 스퀘어라고 부릅니다(반드시 세로줄 알파벳을 먼저 쓰고 그 다음 가로줄 숫자를 씁니다). 흑의 입장에서는 맨 왼쪽 세로줄이 h파일, 맨 아래 가로줄이 8랭크가 되겠지요. 그리고 위 그림처럼 체스판을 그린 대부분의 그림(이건 다이어그램diagram이라고 합니다)들에선 특별한 설명이 없는 이상 아래가 백, 위가 흑입니다. 그러니까 위 그림처럼 판 옆에 기호가 안 써져 있어도 왼쪽이 a파일, 아래가 1랭크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그리고 각각의 기물은 영어 약자로 표현합니다. 킹King은 K, 퀸Queen은 Q, 룩Rook은 R, 비숍Bishop은 B, 나이트kNight는 N (K는 킹과 겹치니까요)으로 표기합니다. 폰은? 폰은 약자로 쓰지 않습니다. 나중에 다시 설명드리죠.


이것들을 조합해 말의 움직임을 표현합니다. 예를 들어

와 같이 나이트가 이동했다고 합시다. 저 지점은 왼쪽에서 5번째 세로줄(e파일), 아래에서 6번째 가로줄(6랭크)이 만나는 지점, 즉 e6입니다. 이곳으로 나이트가 이동했으면, 나이트(N)가 e6으로 이동했다는 뜻으로 Ne6라고 씁니다. 즉 이동한 말의 약자와 이동한 지점을 쓰는 것입니다.

그런데 떄로는 똑같은 두 말이 한 지점으로 갈 수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오른쪽의 룩이 e3으로 이동했다고 합시다. 이걸 그냥 Re3라고 쓰면, 기보를 본 사람들은 왼쪽 룩이 e3으로 갔다는 건지, 오른쪽 룩이 e3으로 갔다는 건지 알 수가 없겠죠? 이런 경우는 움직인 말이 있던 세로줄을 같이 써 줍니다. 위의 경우 오른쪽 룩, 즉 f파일에 있던 룩이 움직였으니 Rfe3라고, 말의 약자 옆에 써 줍니다.

만약 같은 세로줄에 놓인 말의 경우에는 가로줄의 번호를 써 주면 됩니다. 예를 들어 룩이 d7과 d3에 있는데, d7의 룩이 d5로 이동했다면 R7d5라고 씁니다.


그리고 말이 이동하면서 기물을 잡은 경우는 'x'라는 기호를 붙여 줍니다. 예를 들어 퀸이 h6으로 이동하여 거기 있던 상대의 말을 잡았다면 Qxh6이라고 쓰는 겁니다. 어떤 말을 잡았는가는 쓰지 않습니다.


폰의 경우는 좀 헷갈립니다(행마법도 복잡한데 기보 쓰는 법도 복잡합니다 -_-). 폰이 움직였을 경우, 말을 나타내는 약자를 쓰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폰이 c5로 이동했을 경우 Pc5라고 쓰는 게 아니라 그냥 c5라고만 쓰면 됩니다. 말을 나타내는 글자 없이 달랑 지점을 나타내는 기호만 있다면 폰이 움직인 거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그리고 폰이 상대의 말을 잡았을 경우, 예를 들어 d4에 있던 폰이 e5에 있던 말을 잡을 경우 xe5...라고 쓰는 게 아니라(...) 폰이 원래 있던 세로줄 기호를 앞에 써서 dxe5라고 씁니다(참고로, 가끔씩 이 x를 생략하고 de5라고 쓰는 경우도 있습니다). 만약 e7 폰이 e5로 전진하는 걸 d5 폰이 앙 파상으로 잡았다면, dxe5...가 아니라 dxe6으로 쓰면 됩니다. 폰이 움직여간 지점을 쓰는 겁니다. (참고로, 앙 파상으로 잡았다는 뜻으로 뒤에 e.p. 라고 써 주기도 합니다. 안 써도 됩니다.)

그리고 폰이 승진하연, 예를 들어 d7 폰이 d8로 전진하여 퀸이 되었다면, d8=Q라고 씁니다. 폰이 d8로 움직였다는 기호 뒤에 =와 승진한 기물의 약자를 쓰는 것이지요. (d8Q처럼 등호를 생략하는 경우도 있다더군요)


그리고 캐슬링을 했을 경우, 킹사이드 캐슬링(short castling)은 O-O, 퀸사이드 캐슬링(long castling)은 O-O-O로 씁니다. (참고로 이게 좀 헷갈리는 게, 국제 체스 연맹(FIDE)의 지침에는 숫자 0를 쓰라는데, 저는 지금까지 알파벳 대문자 O로 쓴 것만 봤지 0를 쓴 건 못 봤습니다. 컴퓨터 기보 파일인 PGN 파일에서 O라고 쓰기 때문에 대부분 O를 쓰는 것 같습니다. 저도 이 글을 쓰기 전까지 당연히 O인 줄 알았는데, 위키피디아에 이런 얘기가 쓰여 있더군요.)

그리고 체크가 될 경우 +기호를 씁니다. 예를 들어 퀸이 g7로 움직여 체크가 되었다면 Qg7+이라고 씁니다. 그리고 체크메이트가 되면 #기호를 씁니다. 룩이 h8로 움직여 체크메이트가 되었다면 Rh8#로 쓰는 것입니다.

그리고 게임이 끝난 경우 기보 끝에 1-0, 0-1, 1/2-1/2 등을 씁니다. 앞이 백이고 뒤가 흑입니다. 1-0은 백이 이겼다는 뜻이고, 0-1은 흑이 이긴 것, 1/2-1/2는 비긴 것입니다.

그리고 때로는 기보 뒤에 느낌표나 물음표가 붙은 경우가 있습니다. 이것은 그 수에 대한 게임 분석자의 평가입니다. !는 좋은 수, !!은 조낸 좋은 수, ?은 나쁜 수, ??은 조낸 나쁜 수(blunder)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은 흥미로운 수, ?!은 의심스러운 수라는 뜻입니다.


이런 것들을 갖고, 실제 기보는 다음과 같이 씁니다.

1. e4 e5
2. Nf3 Nc6
3. Bb5 a6



백과 흑의 수를 번갈아 쓰고, 수마다 번호를 붙이는 것입니다.

그리고 기보 도중에 분석자의 주석이 달린 경우, 그리고 주석이 끝나고 이어서 쓰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 때 흑의 수가 이어진다면 기보 앞에 ...을 넣어 백의 수가 앞에 이미 기록되었고, 이건 흑의 수임을 나타냅니다.

1. e4 e5
2. Nf3
쏼라 쏼라
2...Nc6

같은 식입니다.


그럼 게임 한 판이 통째로 기록된 기보를 보시고, 기보가 잘 이해되시는지 확인해 보세요.

1. e4 d5 2. exd5 Qxd5 3. Nc3 Qe5+ 4. Be2 Nc6 5. Nf3 Qe6 6. O-O g6 7. Re1 Bg7 8. Bb5 Qf5 9. Bxc6+ bxc6 10. d4 e6 11. Ne4 Bb7 12. Nc5 Rb8 13. c3 Nf6 14. Qb3 Ng4 15. Nxb7 Kd7 16. Nc5+  Kd6 17. Qa3 Qc2 18. Rf1 Kd5 19. Na6 Rb7 20. Qc5+ Ke4 21. Qxc6+ Kd3? 22. Ne1+! Ke2 23. Qf3# 1-0



마지막 상황은 이렇게 됩니다. 처음이라 익숙하지 않으실 텐데, 제가 전에 올린 게임 분석을 보시면서 기보에 쓰인 진행과 체스판 스샷을 비교하며 따라가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네요.

Posted by 크리스Φ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