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글에도 쓴 적 있지만 나는 의경 출신이고, 방범순찰대 행정반에서 근무했었다. 경기지방경찰청 소속 부대였기 때문에 당시 경기청장이던 조현오 청장(옛날엔 꼬박꼬박 '님'자 붙여야 했는데, 지금은 민간인이니까)이 추진하던 실적 경쟁, 즉 성과주의에 관한 지시사항도 많이 접했다.
일단 '청장 지시사항' 등의 공문으로도 많이 하달되었고, 경찰 게시판 등에도 관련 글이 많이 올라왔기도 하지만, 의경 중대의 경우 '부대 등급 평가'라는 게 생겨서, 부대의 자체사고(구타 같은 거) 방지 대책, 의경 후생복지, 사기진작 등을 어떻게 추진하고 있는지 보고 점수를 매겨서 A, B, C등급으로 나누고 A등급은 특박을 주고, C등급은 등급 상승 대책 보고를 하는 등 이익/불이익을 주었다. 갑자기 이런 게 생기는 바람에 중대 행정대원들은 자체사고 대책, 사기진작 방안 수립에 제출자료 정리 등 생고생에 죽을 똥을 쌌다 -_-
Ah,how hard it is to tell
the nature of that wood, savage, dense and harsh -
the very thought of it renews my fear ! (단테, 신곡 <지옥편> I. 4-6)
이건 그렇다 치고, '치안종합성과평가'라는 게 있었는데(이것 자체는 조 청장 이전부터 있었다고 알고 있다) 이건 부대가 1년간 방범근무를 몇 시간 했나, 상황출동(시위 진압)을 몇 번 나갔나, 범죄자 검거나 불법시위용품(쇠파이프 등) 수거를 얼마나 했는가, 자체사고가 얼마나 터졌는가 등 사항을 갖고 또 점수를 매겨서 가, 나, 다 등급으로 나누는 것이다. 이거 관련 자료를 보고하라고 지방청에서 공문이 왔길래 서류 뒤져서 근무시간 세고 검거 내용 쓰고 해서 보고했는데, 나중에 결과 나온 걸 보니 우리가 꼴등인 거다(...) 뭐가 부족해서 우리가 꼴등했나 동봉된 평가표를 봤더니, 상황출동이나 범죄자 검거는 거의 운빨(...)이기 때문에 큰 변수가 아닌데, 다른 중대는 방범근무 시간이 1년간 천 몇백 시간이었는데 우리 중대만 네 자리를 겨우 넘겼다(내 기억이 정확한지는 모르겠지만, 하여간 수치는 대충 맞다). 그런데 왜 우리 중대만 이렇게 근무시간이 적지? 하고 좀 계산을 해 봤더니, 보통 방범근무를 나가면 하루 5시간을 나가니까, 1년에 천 몇백 시간 방범을 나가려면 거의 365일 빠짐없이 방범을 돌았다는 게 된다. 그런데 모든 중대는 한 달에 4번 부대 휴무일이 있고(기동대는 더 많다), 중대 특박도 있고, 게다가 그 해는 평택 쌍용자동차 공장 농성 때문에 거의 두 달 정도는 경기도 전 중대가 평택에서 살았기 때문에(...) 이것만 해도 근 100일 정도는 잡아먹는다. 그러니까 우리 중대만 빼고 전부 근무시간을 가라로 보고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걸 갖고 직원들은 '딴 중대는 다 가라로 늘려 보고했는데 왜 너네만 그대로 보고했냐, 그렇게 일에 신경을 안 쓰냐'는 식으로 우릴 갈궈댔다 -_- 힘없는 의경은 말대답도 못하고 속으로 '나중에 전역하고 봅시다'라고만 되뇌일 밖에. 나중에 알고 보니 이 평가가 직원들 보너스 액수에 관계된 거였다(...)
이러한 내 경험은 내 선임 중 한 사람의 말로 요약할 수 있다. 이 사람이 경찰 되려고 순경 시험 준비 중이었는데, 전역할 때쯤 '경찰 더러워서 못해먹겠다'면서 포기했다(...) 내가 있었던 중대 직원들을 보면, 진짜 인간적으로 존경할 만한 분도 있긴 했는데, 대부분은 '이런 자에게 사회의 치안을 맡겨야 한단 말인가'하는 생각이 들 지경이었다(...) 성과주의 같은 게 성공하려면 지역별 범죄 발생율 차이, 범죄 검거보다 예방이 중요하다는 인식 같은 건 제쳐두고라도 일단 공정하고 투명한 경쟁이 이루어져야 하는데, 경찰 대부분(적어도 내가 본)의 정신 상태가 이러니, 가라의 왕국이 될 수밖에(...)
P.S. 이거 보고 누가 경찰 자료 뒤져서 내 소속 중대 추적하고 나 내부고발로 고소하는 것 아니겠지? 어차피 손님도 별로 없는 작은 블로그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