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 있을 때(의경 행정반이었다) 행정반에서 TV를 보고 있었는데, 마침 영화 <인디펜던스 데이>를 하고 있었다. 그때 나온 장면이 클라이막스인, 주인공 아버지(였나?)인 술꾼 아저씨가 전투기를 몰고 외계인 우주선과 싸우는데 미사일 발사 장치가 고장나서 대통령에게 '자식들에게 사랑한다고 전해 주십시오'란 무전을 날리고 레이저 포를 쏘려는 우주선에 부딪쳐 자폭하는 대목이었다. (미국 중심적인 영웅주의네 어쩌네 하고 까기도 하지만, 중요한 건 이런 게 아니고)


(찾아보니 1996년에 나온 영화다.)

이 장면을 보고 내가
'옛날에 이 영화 극장에서 봤는데, 사람들이 이 장면에서 박수 쳤었는데...' 라고 말했다.

나보다 한 살 어린 후임은
'그러고 보니 옛날에는 사람들이 극장에서 박수를 쳤습니다?' 라고 말했고,

나보다 세 살 어린 후임은 (내가 군대를 늦게 갔다 -_-)
'극장에서 박수를 쳤다 말입니까? ㅋㅋㅋㅋㅋㅋㅋㅋ' 라고 말했다.


옛날에는 왜 사람들이 영화관에서 감동적인 장면이 나오면 박수를 쳤을까? 그리고 왜 지금은 박수를 치지 않을까? 음악회 같은 데에서는 박수를 치는데?

간단히 생각해 보면, 박수를 친다는 것은 '감동의 배출', '예술가에 대한 경의', '다른 관객들과 감동을 나눔' 등의 요소가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예나 지금이나 영화의 창작자가 극장의 관객 앞에 있을 가능성이 0에 수렴한다는 조건에는 변함이 없으므로, 옛날과 지금의 차이를 설명하는 데에 두 번째 요소는 고려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그리고 지난 10여년간 영화의 질적 수준이 추락한 것이 아니라면, 옛날 영화나 지금 영화나 주는 감동의 크기도 큰 차이가 없다고 가정할 수 있으므로 첫 번째 요소도 원인에서 배제할 수 있다. 그렇다면 문제는 세 번째 요소인데, 즉 '다른 관객들과 감동을 공유하고, 다 함께 감동을 표현하는 것'이 옛날에는 가능했는데 지금은 불가능해졌다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가 일어난 것은 무엇 때문일까? IMF 경제 위기를 겪으면서 사회가 타인과의 협동보다는 경쟁을 권하는 방향으로 변하였기 때문일까?

이번에는 미시적 관점(...)에서 생각해 보면, 사람들이 박수를 칠 때, 분명 맨 처음 박수를 침으로써 다른 사람들의 호응을 유도하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누군가가 존재할 것이다. 대부분의 경우(음악회 연주가 끝난 다음이라던가), 관객들이 박수를 칠 때는 '다른 사람도 이 때쯤 박수를 치겠지'라고 생각하고서 다들 비슷한 타이밍에 박수를 치기 마련이므로 이런 경우는 누가 먼저 박수를 치는가는 그닥 중요하지 않다. 그러나 사람들이 박수를 치는 것이 일반적이지 않은 매체에서는 그 결정적인 누군가의 바람잡이가 중요해질 것이라 추측할 수 있다. 옛날 극장에서는 박수를 치는 것이 흔했기 때문에 바람잡이가 필요 없었던 것일까? 만약 박수를 치는 것이 흔했다면, 지금은 왜 박수를 치지 않는 것인가? (이 경우 앞의 접근 방식으로 돌아가게 된다) 처음 박수를 치는 사람이 존재했다면, 그 자들의 정체는 무엇인가? 무엇이 그들에게 박수를 칠 용기를 불어넣어 주었던 것일까? 극장에서 모종의 이유로 바람잡이를 고용해 관객 속에 심어 놓았던 것일까? 지금 사람들이 박수를 치지 않는 것은 박수의 스타트를 끊는 용자가 존재하지 않는 것 때문인가? (이걸 확인해 보려면 영화관에 가서 영화의 절정에 용감하게 박수를 쳐 보면 될 것이다. 사람들이 같이 박수를 칠까, 아니면 '저거 웬 미친 놈이야'란 반응과 함께 혼자 쪽팔려지게 될까?)

그런데 클래식 음악회 같은 곳에서는, 클래식 음악을 잘 모르는 사람들도 남들이 박수를 치면 덩달아 박수를 친다. 극단적인 경우, 청중들이 죄다 클래식 음악을 좋아하는 게 아니라 어떤 의무 같은 것(음악 숙제라던가)에 의해 끌려온 것이라면, 관객들은 별로 감동을 느끼지 않았는데 박수를 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해 본다면, 박수라는 것은 관객이 받은 감동과는 무관하게, 그저 예술가에게 예의상 보내 주는 빈말 같은 것일까? 그렇다면 옛날에는 사람들이 순수해서, 감동을 받으면 박수를 받아 줄 예술가가 앞에 있건 말건 오직 자신의 감동을 표출하기 위하여 박수를 쳤었는데, 지금은 박수를 친다는 것에 '감동의 배출'이라는 요소가 사라지고 그저 예의상의 겉치레에 불과한 것으로 전락했기 때문에 예술가가 없는 영화관에서는 박수를 칠 필요가 없어서 안 치는 것 뿐일까? (이걸 검증해 보려면 감독을 앞에 세워 두고 재미없는 영화를 보여 주면 될 것이다. 관객들은 영화의 수준과는 무관하게 감독이 앞에 있으면 박수를 칠까?)




Why so serious?


P.S. 혹시 다른 극장에서는 지금도 사람들이 박수를 치는데, 내가 갔던 극장에서만 박수를 안 치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이 글은 한낱 헛소리가 되어 버리고 마는데...

Posted by 크리스Φ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