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안단테 님의 '릴레이 문답' 에 대한 벌칙 게임으로서 작성되었습니다.)


전에 안단테 님께서 이웃 블로거를 소개하는 릴레이 문답으로 저를 선정하셨습니다. 원래는 기한 내에 제 이웃 블로거 분들을 소개하는 글을 올려야 했는데, 개인 사정으로 이를 지키지 못해서... 대신 벌칙 게임으로 맛집 또는 음식 레시피를 소개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친구들을 만나면 맛집 찾기에는 관심이 없고 그저 술만 푸는 게 성미인지라 맛집은 도통 모르겠고, 부엌 일 돕기는 좀 해 봤지만 직접 제대로 된 요리를 완성해 본 일이 없는지라 딱히 레시피랄 것도 없고... 해서, 생각 끝에 제가 자주 마시는 홍차에 무엇을 섞으면 맛있을 것인가에 대한 연구, 실험을 진행해 보았습니다.

저는 맛에 관해서 그닥 민감한 편은 아니지만, 커피는 마시면 입이 텁텁해서 주로 홍차나 녹차를 마십니다. 그렇다고 차에 대해 잘 아는 것은 아니고, 그냥 제 식대로 대충 타서 마시는 것에 불과합니다. 그 동안 홍차 스트레이트를 마시면서 뭔가 좀 심심하다 싶던 차에, 이번 일을 계기로 하여 홍차를 탈 때마다 제 안에 숨어 있던 매드 사이언티스트적 기질을 발휘해 집 안에서 발견할 수 있는 식재료를 좀 섞어서 마셔 보았습니다. 대략 1개월에 걸쳐 저 자신을 피실험자로 삼아 실험을 진행하면서 정말 벌칙 게임다운 홍차 맛을 느껴 본 적도 있었고, 아래에 쓴 글도 레시피라기보다는 실패담에 가까우나(...) 다행히 한 가지 쓸만한 조합을 건질 수 있었습니다.


<홍차의 각종 첨가물과 그 영향에 관한 실험 보고서>

본 실험에서 홍차는 립톤 옐로우 레이블 티 티백 1개를, 물의 양은 약 300ml (밀크티의 경우를 제외하고) 를 사용했다.



* 주 : 이하의 조합에 대한 맛 평가는 본인의 입맛에 맞추어진 것이므로, 타인이 이를 따라 복용하였다가 두통, 객담, 식욕감퇴 등의 증상이 나타나더라도 책임질 수 없다.


1. 홍차 + 우유

원래 밀크티는 우유를 데워서 넣는 것이 정석이나 집에 전자레인지가 없는데다 가스 레인지로 우유를 데우기가 좀 번거로운 고로, 차가운 우유를 이용하여 먹을 만한 밀크티를 만들어 보고자 하였다.

(1) 끓는 물 150ml 정도에 홍차 티백을 넣고 5분간 흔든다. 우유를 넣으면 맛이 흐려지기 때문에, 마구 흔들어서 홍차가 사약처럼 느껴질 정도로 진하게 우려야 한다.

 

(2) 냉장고에서 갓 꺼낸 차갑고 신선한 우유를 넣는다. 이 때의 비율은 홍차 : 우유 = 1 : 0.8 정도가 적당하다. 우유가 너무 적으면 홍차도 아니고 밀크티도 아닌 애매한 액체가 되고, 우유를 너무 많이 넣으면 맛이 너무 흐려지는데다 차가 차갑게 식어 버린다.

(3) 우유를 데우면 약간 단맛이 나는데, 이 경우 우유를 데우는 과정을 거치지 않았기에 단맛이 살지 않는다. 따라서 취향에 따라 꿀, 설탕 등을 살짝 넣어 주면 좋다.

아무래도 우유를 데워서 제대로 만든 밀크티만큼 맛있지는 않다. 단맛이 좀 약하고, 게다가 찬 우유 때문에 차가 미지근해져 버려서 어정쩡하고 밋밋한 맛이 된다. 그래도 단 것을 조금 넣어 주면 꽤 먹을 만하다.



2. 홍차 + 꿀

일찍이 '러시안 티를 한 잔. 잼도 아니고 마멀레이드도 아니고 꿀을 넣어서.' 라 설파하신 양 웬리 원수의 뜻을 기리고자 홍차에 꿀을 넣어 보았다.


(양 웬리 장군의 또다른 명언 - 건강과 미용을 위해 식후에는 한 잔의 홍차.)


(1) 끓는 물에 홍차 티백을 넣고 3분간 우린다.
(2) 약간의 꿀을 넣고 잘 저은 후 간을 본다.
(3) 단맛이 별로 느껴지지 않으므로 꿀을 좀더 넣고 간을 본다.
(4) 단맛이 별로 느껴지지 않으므로 꿀을 좀더 넣고 간을 본다.
(5) 단맛이 별로 느껴지지 않으므로 꿀을 좀더 넣고 간을 본다.

...

(n) 홍차가 꿀물이 되었다.

꿀의 양을 조절하기가 어렵다. 조금 넣으면 단맛이 나질 않아서 조금씩 더 넣고 더 넣고 하다 보면 어느 새 홍차 향이 나는 꿀물이 되어 있다. 아무래도 넣은 꿀의 양과 미각이 인지하는 단맛이 정비례하여 일차함수적으로 증가하는 게 아니라 이차함수적으로 급격히 증가하는 것 같다. 이건 술 마신 다음날 해장용으로 마셔야겠다.


3. 홍차 + 잼

러시아에서는 잼에 홍차를 타 먹는다길래 시도해 보았다.

(1) 끓는 물에 홍차 티백을 넣고 3분간 우린다.
(2) 잼 - 내 경우엔 블루베리 잼을 사용했다 - 을 2 ~ 3스푼 넣고 잘 저어 준다.
(3) 마신다.

이 레시피의 단점은, 찻잔 바닥에 건더기(...)가 가라앉아 미관상 좋지 않다는 것이다. 게다가 잼을 조금만 넣으면 맛이 잘 나지 않아서 필연적으로 잼을 많이 넣을 수밖에 없는데, 그리하면 바닥에 가라앉는 건더기의 양이 점점 늘어난다는 숙명적인 딜레마가 발생한다. 좀 많이 넣으면 가벼운 건더기가 둥둥 떠다니기도 한다.

러시아 본토의 잼은 건더기가 크고 국물이 많아서, 건더기를 피해 국물만 잘 퍼서 타면 이러한 건더기 문제를 피할 수 있는 것 같다.


(참고 - 러시아 잼 사진. 출처는 위키피디아.)

어쨌든 맛은, 달달한 맛과 함께 약간 시큼한 맛이 난다. 차를 마셔서 양이 줄어들어 바닥의 건더기가 가까워질수록 그 맛이 강해진다.


4. 홍차 + 포도주스

홍차 + 잼의 사례에서 발생한 건더기 문제를 피하는 동시에 잼의 달콤함과 과일 맛을 얻는 방법으로써, 포도주스를 넣는다는 착상을 떠올렸다.



(1) 끓는 물에 홍차 티백을 넣고 3분간 우린다.
(2) 포도주스를 적절히 넣는다. 얼마나 넣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얼마를 넣든 후회하게 될 테니까.
(3) 마신다.

시판되는 대부분의 주스는 과즙을 농축시켰다가 다시 희석하여 생산되며, 구연산, 비타민 C, 착향료 등의 첨가물이 들어 있다는 현실을 고려했어야 했다. 조금만 넣었더니 주스 라벨의 성분표에 적혀 있는 구연산 같은 맛이 났다. 그래서 점점 주스의 양을 늘려가다 보니, 부페 등에서 볼 수 있는 와인 홍차에 물을 탄 것 같은 맛이 되어 버렸다. 들척지근하면서도 밍밍하고, 존재의 의미를 묻는 듯이 고뇌하는 맛이었다. 차라리 화끈하게 액체 육젓 같은 걸 들이켜는 게 속 시원하겠다 싶었다.


5. 홍차 + 와인

양 웬리 장군처럼 브랜디를 넣고 싶었지만 집에 브랜디가 없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브랜디가 없으면 와인으로. 집에 있는 만 원대 와인을 조금 넣어 보았다.

(1) 끓는 물에 홍차 티백을 넣고 3분간 우린다.
(2) 와인을 약간 넣는다. 대략 2 ~ 4스푼 정도가 적절하다.
(3) 마신다.

처음에는 와인 넣는 양을 잡지 못해 고생했다. 너무 적게 넣으면 넣은 것 같지가 않고, 너무 많이 넣으면 데운 와인 맛이 났다. 대략 2 ~ 4스푼 정도가 알맞은 듯하다.

맛은 꽤나 괜찮다!!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김에 와인의 향이 올라와서 향이 무척 강해지고, 맛도 강해진다. 술 향기가 나기 때문에 살짝 알딸딸해지는 효능도 나타난다. 온갖 역경을 거쳐 드디어 한 건 해냈다는 보람이 느껴졌다.



번외편. 녹차 + 와인
                                                                                     녹  차              술
홍차 + 와인의 성공에 고무되어, 이를 녹차에 응용함으로써 '몸에 좋은 것 + 맛있는 것 = 몸에 좋고 맛있는 것' 이라는 명쾌한 논리에 의거해 완벽한 음료를 제조하고자 하였다.

(1) 따뜻한 물에 녹차를 넣고 3분간 우린다.
(2) 와인을 약간 넣는다. 너무 많이 넣으면 안 되니까 조금만... 어이쿠, 손이 미끄러졌네!



1차 시도에서, 녹차에 와인이 1/4컵 가량 들어가 버리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마치 칵테일처럼 위층은 황금빛 녹차, 아래층은 핏빛 와인으로 나뉘어진 장관이 연출되었다. 잘 흔들어 마시자 따뜻하게 데운 구수한 와인 맛이 났다. 이건 아니지 싶었다.


다시.

(1) 따뜻한 물에 녹차를 넣고 3분간 우린다.
(2) 와인을 약간 넣는다. 차의 색이 연한 적갈색이 될 때까지 넣는다.
(3) 마신다.

와인을 조금씩 넣고 맛을 보며 와인 첨가량의 마지노선을 찾았다. 산-염기 중화 적정 실험을 하는 기분이었다. 녹차를 베이스로 해서 약간의 와인 향과 약간의 시큼함이 느껴지는 맛이 났다. 먹을 만하긴 한데, 이건 녹차도 아니고 와인도 아닌 뭐라 형언할 수 없는 기묘한 액체라는 느낌이 들었다. 마치 정체성을 상실한 오발탄 같은 맛이었다.


총평: 홍차 + 와인>>>>>찬 우유>꿀>잼>>>>>(넘사벽)>>>>>녹차 + 와인>>>>>(넘사벽)>>>>>홍차 + 포도주스

한줄 요약 - 홍차에 와인을 약간 넣으면 좋다.



P.S.


Posted by 크리스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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