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 중에 일본의 단테 연구가가 쓴 <신곡> 해설서인 <단테 신곡 강의>를 읽었는데, 거기에서 <신곡>의 여러 가지 일본어 번역을 인용, 비교한 것을 보고 (물론 한국어로 번역되어 있었지만) 잉여력이 끓어올라 도서관에서 <신곡>의 여러 한국어 번역을 찾아 몇 구절만 비교해 보기로 하였다.
도서관의 <신곡> 번역본 중에서 인터넷 등을 통해 역자의 약력을 확실히 찾을 수 있고, 역자가 이탈리아어를 알고 있음이 분명하여 중역의 가능성이 낮고, 운문체로 번역되어 있는 것들을 추려 보았다. 예컨대 유영, 구자운 번역은 역자가 영문학자, 노문학자라 중역일 듯하고, 최현 번역은 역자가 이탈리아어를 아는지 알 수가 없는데다 산문 번역이라 제외했다. 다만 최민순 신부 번역은 중역이라는 이야기가 있으나, 워낙 유명하고 인정받는 번역이라 포함시켰다. 간략한 서지사항은 대략 다음과 같다.
임명방 번역, 동화출판사, 1970. (이탈리아에서 수학하였고, 철학박사 학위) 최민순 번역, 을유문화사, 1977. (가톨릭 신부. 최민순 신부 번역은 1957년 경향잡지사에서 처음 나왔다고 한다.) 허인 번역, 동서문화사, 1978. (이탈리아에서 수학, 한국외대 이탈리아과 명예교수) 한형곤 번역, 서해문집, 2005. (한국외대 이탈리아어과 교수. 1978년 첫 번역이 나왔고, 이게 세번째 개정판이라 한다.) 박상진 번역, 민음사, 2007. (부산외대 이탈리아어과 교수) 김운찬 번역, 열린책들, 2007. (대구가톨릭대 이탈리아어과 교수)
(* 이 중에서 박상진 번역본은 이미 대출을 당해서(...) 도통 반납이 되질 않길래 찾지 못했다. 기다리다 지쳐서 우선 글을 먼저 쓰고, 나중에 들어오거든 확인해서 추가할 예정이다. 10월 4일 박상진 번역본을 추가했다.)
이 번역본들 중 네 구절만 찍어서 비교해 보기로 했다. 찍은 구절은 지옥편 1곡 1-12행, 3곡 1-9행, 연옥편 30곡 43-54행, 천국편 31곡 79-90행이다. (내 마음대로 찍었다 -_-;;)
삶의 나그넷길 고비를 넘어 내 가야 할 올바른 길 잃고 나는 컴컴한 깊은 숲 속을 헤메였노라.
쓸쓸하고 거칠고 발 들이기 힘든 이 수풀 생각만 하여도 몸서리쳐지는데 어찌 쉽사리 이를 들어 말할 수 있으리오.
죽음보다 더욱 괴로운 일이었건만 내 거기에서 찾을 수 있었던 행복을 알리려 하노니 또한 거기에서 경험한 모든 일들을 얘기하노라.
어찌하여 그 길로 발을 들였는지는 쉽게 말하기 어렵도다. 내 가야 할 참된 길을 잃어 버린 그 즈음 너무나 깊은 잠에 사로 잡혔으리라. (임명방)
한뉘 나그넷길 반 고비에 올바른 길 잃고 헤매이던 나 컴컴한 숲 속에 서 있었노라.
아으 호젓이 덧거칠고 억센 이 수풀 그 생각조차 새삼 몸서리쳐지거든 아으 이를 들어 말함이 얼마나 대견한고!
죽음보다 못지 않게 쓰거운 일이었어도 내 거기에 얻어본 행복을 아뢰려노니 게서 익히 보아둔 또 다른 것들도 나는 얘기하리라.
어찌하여 그리로 들어섰는지 내 좋이 말할 길 없으되 참다운 길을 내던져버린 바로 그 즈음 그토록 잠은 깊었던 탓이어라. (최민순)
인생의 중반기에서 올바른 길을 벗어난 내가 눈을 떴을 때는 컴컴한 숲속에 있었다.
그 가열(苛烈)하고도 황량한, 준엄한 숲이 어떤 것이었는지 입에 담는 것조차 괴롭다. 생각만 해도 몸서리쳐진다.
그 괴로움이란 진정 죽을 것만 같았다. 그러나 거기서 만난 행복을 이야기하기 위해 거기서 목격한 두세 가지 일을 우선 이야기할까 한다.
어떻게 해서 그곳에 발을 들였는지는 쉽게 말할 수가 없다. 당시 나는 그저 공연한 일에 열중되어 그래서 올바른 길을 버렸던 것이다. (허인)
우리네 인생길 반 고비에 올바른 길을 잃고서, 나는 어두운 숲 속에 있었다.
아, 거칠고 사납던 이 숲이 어떠했노라 말하기가 너무 힘겨워 생각만 하여도 몸서리쳐진다!
죽음 못지않게 씁쓸했기에 나 거기서 깨달은 선을 말하기 위하여 거기서 본 다른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리라.
나 어찌 거기 들어섰는지 말할 수 없지만 올바른 길 버릴 바로 그때 무던히도 잠에 취했던 탓이다. (한형곤)
우리 인생길 반 고비에 올바른 길을 잃고서 난 어두운 숲에 처했었네.
아, 이 거친 숲이 얼마나 가혹하며 완강했는지 얼마나 말하기 힘든 일인가! 생각만 해도 두려움이 새로 솟는다.
죽음도 그보다 덜 쓸 테지만, 거기서 찾았던 선(善)을 다루기 위해 거기서 보아 둔 다른 것들도 말하려 한다.
어떻게 숲에 들어섰는지는 확실히 말할 수 없으나, 진정한 길에서 벗어난 그때 잠에 취해 있었던 것은 분명하다. (박상진)
우리 인생길의 한중간에서 나는 올바른 길을 잃어버렸기에 어두운 숲 속에서 헤매고 있었다.
아, 얼마나 거칠고 황량하고 험한 숲이었는지 말하기 힘든 일이니, 생각만 해도 두려움이 되살아난다!
죽음 못지않게 쓰라린 일이지만, 거기에서 찾은 선을 이야기하기 위해 내가 거기서 본 다른 것들을 말하련다.
올바른 길을 잃어버렸을 때 나는 무척이나 잠에 취해 있어서, 어떻게 거기 들어갔는지 자세히 말할 수 없다. (김운찬)
'나를 거쳐 슬픔의 마을로 간다. 나를 거쳐 영원한 고통으로 간다. 나를 거쳐 버림받은 족속으로 되어 간다.
정의는 지존하신 내 창조주를 움직여 주의 위력, 지상(至上)의 지혜 그리고 사랑의 근본이 나를 존재케 하였노라.
나를 앞서 창조된 것으로는 영원한 것 외는 또 없으며, 그러기에 나는 영원히 존재하리라 이 길로 가는 너희들, 모든 희망을 버릴지어다.' (임명방)
'나를 거쳐서 슬픈 고을로 가는 것 나를 거쳐서 끝없는 괴로움으로 가는 것 나를 거쳐서 멸망된 족속 안으로 드는 것이니라
정의(正義)는 내 지존(至尊)하신 창조주(創造主)를 움직이어 천주(天主)의 힘, 그 극(極)한 지혜(智慧)와 본연(本然)의 사랑이 나를 만들었느니라
나 앞에 창조(創造)된 것이란 영원(永遠)한 것 외에 또 없어 나는 영겁(永劫*)까지 남아 있으리니 여기 들어오는 너희 온갖 희망(希望)을 버릴진저' (최민순)
* 내가 본 판본에는 '영각(永却)' 이라 되어 있는데, '영겁(永劫)'의 오기인 듯하다. 책에 연필로 고쳐져 있더라.
'슬픔의 나라로 가고자 하는 자 있거든 나를 거쳐 가거라. 영원의 가책을 만나고자 하는 자 나를 거쳐 가거라. 파멸의 사람들에 끼이고자 하는 자 나를 거쳐 가거라.
정의는 지존하신 주(主)를 움직여 주의 위력, 지상(至上)의 지혜, 그리고 사랑의 근본이 나를 만들었노라.
내 앞에 창조된 것 없나니 오직 무궁(無窮)이 있을 뿐, 나는 무궁으로 이어지는 것이니라. 나를 거쳐 가려는 자는 모든 희망을 버리라.' (허인)
나를 거쳐서 고통스런 마을로 가고 나를 거쳐서 영원한 고통 속으로 가며 나를 거쳐서 저주받은 무리 속으로 간다.
정의는 지존이신 나의 창조주를 움직이시어 성스런 힘, 최고의 지혜와 태초의 사랑으로 하여금 나를 이루셨도다.
나보다 먼저 창조된 것이란 영원한 것 이외엔 없으니, 나는 영원토록 남아 있으리라. 여기 들어오는 너희는 온갖 희망을 버릴지어다. (한형곤)
나를 거쳐서 길은 황량의 도시로
나를 거쳐서 길은 영원한 슬픔으로
나를 거쳐서 길은 버림받은 자들 사이로.
나의 창조주는 정의로 움직이시어
전능한 힘과 한량없는 지혜,
태초의 사랑으로 나를 만드셨다.
나 이전에 창조된 것은 영원한 것뿐이니,
나도 영원히 남으리라.
여기 들어오는 너희는 모든 희망을 버려라. (박상진)
<나를 거쳐 고통의 도시로 들어가고, 나를 거쳐 영원한 고통으로 들어가고, 나를 거쳐 길 잃은 무리 속에 들어가노라.
정의는 높으신 내 창조주를 움직여, 성스러운 힘과 최고의 지혜, 최초의 사랑이 나를 만드셨노라.
내 앞에 창조된 것은 영원한 것들뿐, 나는 영원히 지속되니, 여기 들어오는 너희들은 모든 희망을 버릴지어다.> (김운찬)
나는 무서울 때나 괴로울 때 엄마 품에 달려드는 어린아이같이 그저 믿는 것을 찾을까 하여 왼편을 향하여
스승에게 '떨리지 않은 피란 한 방울 도 없으며 옛날의 불꽃의 흔적을 이제야 알게 되었도다.' 라고 말하였더니,
아 그대 더없이 인자하시던 베르길리우스, 몸바쳐 나를 보호하신 베르길리우스, 그대는 벌써 없노라.
옛날 모든 것을 잃었던 어미라도 이슬로 씻기워진 나의 뺨을 다시 눈물로 적시지는 못하였으리라. (임명방)
마치 어린이가 무서웁거나 무엇에 괴로워할 때 어머니한테로 달려드는 것 같이 그저 미더운 생각에서만 왼편을 바라보고
비르질리오에게 '떨리지 않는 피란 한 방울도 저에겐 없나이다 그 옛날의 불꽃의 흔적을 지금에야 아나이다' 라고 말하였더니
비르질리오 더 없이 인자로운 아버지이신 비르질리오 몸바쳐 나를 구하신 비르질리오는 스스로 우리를 떠나 물러가시니라
한 옛날 어미가 잃어버린 그 모든 것일지라도 이슬로 씻기워진 나의 뺨을 눈물로 거듭 흐려지지 않게 못하였느니라 (최민순)
어린이가 무서울 때나 혼이 날 때면 정신없이 엄마 품에 달려들 듯이 나도 왼편을 돌아보고 비르질리오의 도움을 구하고자
외쳤다. '스승님, 온몸의 피가 모조리 들끓습니다. 옛날의 불꽃의 여운이 되살아났읍니다.'
그러나, 아, 다정하고 그리운 아버지 같은 비르질리오, 내가 항상 구원을 찾아 몸을 맡겼던 비르질리오, 그 비르질리오의 모습이 어느덧 사라지고 없었던 것이다.
태고적 어미가 잃었던 그 모두를 가지고서도 이슬로 씻기워진 이 볼이 지금 또다시 눈물로 더럽혀져 가는 것을 어쩔 수가 없었다. (허인)
어린애가 무서움을 타거나 괴로워할 때 제 엄마에게로 달아나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저 어리둥절한 마음으로 왼쪽을 돌아보고
베르길리우스에게 말했다. "떨리지 않는 피란 한 방울도 내게 남아 있지 않답니다. 전 그 옛날의 불꽃의 흔적을 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베르길리우스는 자신을 감추고 우리를 떠났다. 너무나 자애로운 아버지인 베르길리우스! 구원을 위해 내가 그토록 의지한 베르길리우스!
우리네 옛 어미가 잃어버렸던 모든 것일망정 이슬로 씻긴 나의 뺨에 흐르는 눈물을 멈추게 하지 못할 정도였다. (한형곤)
무섭거나 위로가 필요해서 어머니의 가슴으로
달려가는 어린아이의 믿음을 지니고서
왼편으로 돌며 베르길리우스에게 말했다.
"내 핏줄 속에 떨리지 않는 피는
한 방울도 남아 있지 않습니다. 내 눈에는
오래된 불꽃의 흔적만 남았어요."
그러나 베르길리우스는 이미 우리를 떠나 홀로 사라졌다.
더없이 따스한 아버지 베르길리우스여,
나의 구원을 위해 영혼을 맡겼던 베르길리우스여,
옛날의 어머니가 잃어버린 모든 것도
이슬로 씻긴 나의 뺨이
눈물로 얼룩지는 것을 막지는 못했으리라. (박상진)
마치 어린애가 무섭거나 슬플 때면 자기 엄마에게 달려가는 것처럼 믿음직한 왼쪽으로 내 몸을 돌렸고,
베르길리우스께 '떨리지 않는 피는 제게 한 방울도 남아 있지 않습니다. 옛 불꽃의 흔적을 알 수 있습니다' 말하려 하였는데,
베르길리우스는 우리를 떠나 물러가시니, 더없이 인자하신 아버지 베르길리우스, 내 구원을 위해 의지했던 베르길리우스여,
옛날의 어머니가 잃어버린 모든 것도 이슬로 씻긴 나의 뺨들이 눈물로 얼룩지는 것을 막지는 못하였으리라. (김운찬)
'오, 부인이시여, 내 희망은 당신 안에 끓어 넘치고, 그대는 나를 구하기 위해, 고생도 마다하고 일부러 지옥까지 내려와 주셨나니.
내 이렇듯 사물을 모두 볼 수 있는 것은 오로지 당신의 자혜로우신 조력과 은혜의 덕분이로소이다.
당신은, 당신의 힘이 미치는 한, 온갖 길을 거쳐, 온갖 수단을 다하여 나를 노예로부터 자유로 끌어 내 주셨나이다.
당신의 너그러우신 힘을 앞으로도 내게 주옵소서. 당신이 고쳐 주신 나의 영혼은, 당신의 뜻대로 육체의 사슬을 벗어날 것이외다.' (임명방)
'오 당신 안에 내 희망이 굳세어지고 나를 살리려 지옥에 당신의 발자국을 대견히도 남기신 마님이시여
나의 보아온 이 모든 가지가 당신의 힘과 당신의 사랑에서 좇아왔으니 그 은혜와 크신 덕을 알아뵙나이다
당신이야말로 온갖 길 온갖 모양으로 나를 종살이에서 자유로 끌어내셨으니 당신의 하실 수 있는 것을 다 하셨나이다
나 안에 당신의 너그러우심을 간직하사 이미 나수어주신 내 영혼이 당신 마음에 드는채로 육체에서 풀려나게 하소서' (최민순)
'아아, 고귀한 여인이여, 내 희망은 당신 안에서 솟구칩니다. 당신은 나를 구하기 위해 수고를 마다 않고 일부러 지옥까지 내려와 주셨읍니다.
내가 이 모든 것을 볼 수 있는 것은 오로지 당신의 자비로우신 조력과 은혜의 덕분입니다.
당신은, 당신의 힘이 미치는 한 온갖 길을 거쳐, 온갖 수단을 다하여 나를 노예에서 자유로운 몸으로 건져내어 주셨읍니다.
당신의 위대한 힘을 앞으로도 나에게 주십시오. 당신이 고쳐 주신 나의 영혼은 당신의 뜻대로 육체의 사슬을 벗어날 것입니다. (허인)
"오, 여인이시여. 그대 안에 내 희망이 힘을 얻고 그대 나의 구원을 위해 저 지옥 속에 발자취를 남기시는 괴로움을 겪으셨습니다.
내 보아 왔던 그 많고도 많은 것들을 그대의 힘이며 그대의 선에서 온 은혜와 덕으로 나 이제 받아들입니다.
그 모든 길과 그 모든 방법으로써 나를 속박에서 자유로 이끄신 그대, 모든 것을 이루시는 힘을 지니셨습니다.
그대의 너그러움을 내 안에 간직해 그대가 건강히 치유해 준 나의 영혼이 그대의 뜻을 따라 육체에서 풀려나게 하소서." (한형곤)
언제나 나에게 희망을 불어넣고
나의 구원을 위해 지옥의 문턱에
발자국을 남기는 수고를 한 나의 여인이여!
당신의 힘을 통해, 당신의 미덕을 통해,
그동안 내 눈으로 본, 그 많고도 많은
모든 것들을 받아들입니다.
가능한 모든 길들로, 모든 수단들을 사용하여,
당신은 나를 속박에서 자유로 이끌었습니다.
당신은 모든 것을 이루는 힘을 지녔습니다.
당신의 큰 사랑을 내 안에 간직하여
당신이 치료해 준 나의 영혼이 육신에서 놓여날 때
당신에게 기쁨이 되게 하소서. (박상진)
'오, 내 희망에 활력을 부여하고, 나의 구원을 위해 지옥에 발자취를 남기는 것을 감내했던 여인이여,
지금까지 내가 본 모든 것은 바로 그대의 능력과 너그러움에 의한 은총이자 힘이라 생각합니다.
그대는 그대가 할 수 있었던 그 모든 길, 모든 방법을 통하여 나를 하인에서 자유로 이끌었습니다.
그대의 너그러움을 나에게 간직하여 그대가 건강하고 좋게 만들어 준 내 영혼이 육신에서 풀려나게 해주오.' (김운찬)
비교해 보니 어떤 구절에서는 이 번역이 마음에 들고, 다른 구절에서는 저 번역이 마음에 들고... 번역마다 장단이 있는 것 같다. 다만 전체적인 느낌으로는, 최근 번역으로 올수록 정확한 의미 전달을 위해 군더더기 없이 쉽고 명료한 단어를 고르다 보니 시적인 표현력이 많이 부족해졌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그 옛날의 불꽃의 흔적을 지금에야 아나이다' 와 '옛 불꽃의 흔적을 알 수 있습니다' 는 단테가 긴 여행 끝에 베아트리체를 만나서 감정이 북받쳐 읊는 대사인데, 전자에 비해 후자는 단테의 감정이 잘 전해지지 않는 느낌이다. 새 번역이 나오면서 기존 번역의 오역을 고쳐 가는 건 좋지만, 문학적인 읽는 맛이 떨어져 간다는 게 아쉽다. 기왕에 100% 똑같은 번역을 하지 못할 바에야, 어느 정도는 윤문과 간지나는 단어 선택을 해서 시적인 맛을 살리는 것도 좋지 않겠냐는 생각도 들고... 어쨌든 <신곡>을 읽으려는 분들에게 참고가 됐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