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단한 이야기다. 커다란 재단을 상속받은 로즈워터라는 사람이 있는데, 이 사람이 돈 욕심도 없이 가난한 마을에 허름한 재단 사무실을 차려 놓고 거지꼴 생활을 하면서 빈민들한테 돈을 퍼 주고 산다. 그러자 웬 변호사가 재단 규정에 '상속자가 정신이상자라면 상속권을 박탈할 수 있다' 는 조항이 있다는 걸 알고선 로즈워터 씨를 정신이상자로 몰아 쫓아내고 돈을 뜯어내기 위해 그의 행적을 조사하고 소송을 건다는 줄거리다. 로즈워터 씨는 과연 미친 놈일까?


주제 또한 분명하다. '도대체 잘난 것 하나 없이 모자라고 부족한 사람들을 사랑하는 것은 미친 짓인가?'

 "누가 내 걱정을 하겠어요?"
 "내가 하죠."
 "로즈워터 씨는 모든 사람을 걱정해요. 내 말은, 로즈워터 씨 말고 누가 내 걱정을 하겠냐는 거예요?"
 "아주 많은 사람이요, 아줌마."
 "난 멍청하고 늙은 여자예요. 예순여덟이나 먹은..."
 "예순여덟이면 한창때잖아요."
 "예순여덟 해 동안 이 몸뚱이에 좋은 일이라곤 한 번도 없이 살았어요. 좋은 일은 한 번도 없었어요. 어떻게 그랬을까요? 하느님이 뇌를 나눠줄 때 난 문 뒤에 숨어 있었어요."
 "그렇지 않아요!"
"하느님이 튼튼하고 아름다운 몸을 나눠줄 때도 난 문 뒤에 숨어 있었어요. 어렸을 때도 빨리 달리거나 높이 뛰지 못했어요. 정말 아무것도 잘한다고 느껴보질 못했어요, 한 번도. 태어났을 때부터 항상 배에 가스가 차고, 발목이 붓고, 콩팥이 아팠어요. 그리고 하느님이 돈과 행운을 나눠줄 때도 난 문 뒤에 있었어요. 겨우 용기를 내 문을 열고 나와 '하느님, 자비로운 하느님, 여기 작고 늙은 내가 있어요' 라고 속삭이듯 말했을 땐 이미 좋은 건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어요. 어쩔 수 없이 하느님은 나에게 코로 쓰라고 쭈글쭈글한 감자를 줬어요. 머리로 쓰라고 철사를 주었구요. 그리고 개구리 같은 목소리를 주었지요."
                                                                                                                                               p.90.


모든 사람들에게 주어진 능력이 평등할 수는 없다. 유능한 사람이 있으면 무능한 사람도 있게 마련이다. 잘생긴 사람도 있고, 못생긴 사람도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인간의 가치를 유익함과 무익함이라는 잣대로 판단해야만 하는가? 산업 혁명 이래로 인간이 사회에 '유익'하기 위해 갖추어야 할 능력의 경계는 점차 높아지고 있다. 그런데 사회가 뒤처지는 사람들을 돌아보지도 않고 도태시키는 것을 당연히 여기고, '유익'만을 추구하여 앞을 향해 폭주한다면, 결국 다다르는 곳은 어디일까? 그 끝에 과연 유토피아가 존재할까?


 "... 그 문제는 이것이었소.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사람들을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가?
 때가 되면 거의 모든 사람이 상품, 음식, 서비스, 더 많은 기계를 만들어내는 생산자로서 가치를 잃을 것이고, 경제와 기술 분야는 물론이고 어쩌면 의료 분야에서도 실용적인 아이디어 원천으로서 가치를 잃을 것이오. 따라서 만일 우리가 인간을 인간이기 때문에 소중히 여길 수 있는 근거와 방법을 찾지 못하면, 많은 사람이 종종 제안하듯 그들을 완전히 없애는 게 나을지도 모르오."
                                                                                                                                               p.283.



결론은, '인간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인간을 소중히 여기는 가치관이 세상에 뿌리박혀야 한다' 는 것이리라.





사실 이런 주제는 지금에선 꽤나 흔한 것이기도 하고, 전체적으로 내 취향에 맞는 책은 아니었지만(...) 앞에 인용한, 다이애나 아줌마와 로즈워터 씨의 이야기 장면은 어째서인지 크게 가슴에 울렸다.

Posted by 크리스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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