셜록 홈즈, 아니, 아서 코난 도일의 <바스커빌 가문의 개>에 대한 일종의 문학 비평이다. <바스커빌 가문의 개>에서 셜록 홈즈의 추리의 허점을 짚어내고, 사건의 진범이 따로 있었음을 보여 줌으로써 홈즈에 대한 작가의 증오가 작품 속에 무의식적으로 투영되었음을 주장한다. 책은 우선 <바스커빌 가문의 개>의 내용을 정리하고, 홈즈의 수사법을 분석하고, 홈즈의 추리의 허점을 지적하고, 저자의 문학 이론을 펼치며, 자신의 문학론을 <바스커빌 가문의 개>에 적용함으로써 작품의 이면을 분석하고 진범을 밝힌다. 중간의 문학론을 제외하면 쉽게쉽게 읽히고 책도 얇다.

다만 나 같은 대부분의 독자들은 '그래서 진범이 누구라는 거냐?' 에만 관심이 있을 터, 저자의 현학적인 문학 이론에는 관심이 없을 것이다(...) 그래도 책 내용과 내 생각을 정리해 보는 셈치고 일단 저자의 문학론을 대략 정리, 비판해 보고, 그 다음으로 저자의 재해석을 설명하고 이에 대한 내 나름의 재반론을 펼쳐 보겠다.


1. 저자의 문학론에 관하여.


우선 저자는 '문학작품 속 인물들이 전적으로 허구인가, 아니면 어떤 형태로 '실존'하는가' 에 관한 논의를 진행한다. 그런데 여기서 저자는 '실존'이란 단어를 이상하게 정의해서 괜한 혼란을 유도하는 듯한 느낌이다. 저자가 문학작품 속 인물들의 실존을 주장하는 근거로는 (1) 언어상으로는 실제 인물과 가상의 인물 사이에 차이가 없음, (2) 가상의 인물에게 물질적 실재는 없을지라도 심리적 실재는 분명히 존재하며, 이로써 어느 정도의 실재성을 갖게 될 수밖에 없음을 든다. 그런데 (1)의 근거대로라면 언어상으로 '신'이 있으니 신이 실존한다는 주장도 가능하고, 이는 '신이 존재하는가'에 대한 길고도 어려운 논쟁을 불러올 것이다. 즉 여기서 말하는 실존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그 '실존'이 아님이 분명하다. (1)로써 유도될 수 있는 결론은 그저 '언어상의 착각에 의해 가상의 인물이 실존하는 듯한 느낌을 갖게 된다' 정도이다. 또한 (2)의 근거처럼 가상 인물의 심리적 실재는 분명 존재하지만, 이걸 가지고 실존을 운운하는 것은 이상하다. 당장 '어느 정도 실존' 이라는 말이 대체 무슨 소리인가? 실존하면 하는 거고, 아니면 아닌 것이다. 이 경우엔 배중률의 원리에 의거하여 중간은 없다. 또한 '가상 인물들은 우리의 심리 속에 존재한다' 는 말은 뒤집어 생각해 보면 '가상 인물들은 우리의 심리 속에 존재한다' 는 소리이지, 이 말을 가지고 은근슬쩍 '어느 정도의 실존'을 갖는다며 심리적 실재 그 이상의 무언가가 있다는 듯이 묻어가려는 것은 말장난에 불과하다고 생각된다.



정리해 보면 저자는 '텍스트의 인물들은 현실에 실존하듯이 현실 세계에 영향을 미친다' 라고 주장하려는 것 같은데, 같은 주장을 '텍스트의 인물들은 작가와 독자의 마음속에 존재하며 현실 세계에 영향을 미친다' 라고도 바꾸어 쓸 수 있는데 왜 굳이 '실존'이라는 모호한 비유를 끌고 들어왔는지 모르겠다. 저자가 말하는 '실존'이란 '문학 작품이 심리적인 차원을 넘어서는 정도로 우리에게 강한 영향을 미치는 것' 정도로 이해해야 할 것 같다. 저자의 말대로 '실재와 허구의 경계는 불분명하다' 정도로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위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쉽게 바꾸어 표현할 수 있는 말에 그럴듯한 비유를 붙여 혼란을 가중시키는 경우가 많이 보인다. 예를 들어 '텍스트 내의 인물들은 텍스트 내에서 자율성을 누리며, 작가와 독자의 통제를 벗어나 행동하기도 한다' 는 말은 '텍스트는 작가와 독자의 상상의 장이며, 텍스트에 나타나지 않은 곳에서 캐릭터들이 어떤 행동을 하는가는 전적으로 독자들의 자유로운 상상에 달려 있다' 라는 뜻으로 쓴 것 같은데, 저자는 자신이 앞서 전개한 실존에 관한 주장의 연장선상에서 마치 텍스트 속 인물들이 '실존'하는 듯한 비유를 써서, 굳이 '실존' 개념을 가져오지 않고도 설명할 수 있는 주장을 괜시리 복잡하게 늘어놓는다. 그리고 셜록 홈즈를 증오한 코난 도일이 '작품 속에서 무의식적으로 홈즈를 비판했다' 든가 '작품 속의 한 인물이 코난 도일조차 모르게 탐정을 속이고 살인을 저질렀다' 라는 주장도, '코난 도일이 홈즈를 디스하기 위해 일부러 의도적으로 이렇게 썼다' 라는 훨씬 간단한 설명으로 대신할 수 있는데 말이다. 요컨대 저자는, 훨씬 쉽고 간명하게 설명할 수 있는 것을 뭔가 그럴듯하고 '있어 보이게' 주장하려고 정신분석학과 신비로운 비유 등등을 끌어들여 가며 무진 애를 썼다는 느낌이다. 물론 이런 생각은 건조하고 간결한 주장을 좋아하는 공돌이인 내 편견에 사로잡힌 해석일지도 모르지만(...)



또한 저자는 이른바 문학작품 속 인물의 실존-허구 논쟁에서 실존의 편을 들음으로써 텍스트는 허구의 이야기가 아니라 '진실'을, 오직 한 가지의 진실을 담고 있으며, 그로써 자신의 재해석이 옳고, 기존의 해석은 틀렸다고 주장하려는 의도가 있는 것 같다. 뒤이어질 자신의 재해석을 뒷받침하기 위해서 말이다.


2. 셜록 홈즈를 위한 변론.

(여기에는 본서와 <바스커빌 가문의 개>에 관한 스포일러가 잔뜩 나옵니다!!)

우선 나는 저자의 재해석이 굉장히 일리 있다고 생각한다는 것을 밝혀 두어야겠다. 앞서 말한 저자의 현학적인 문학론에는 반대하지만, 저자가 작품 속 추리의 허점과 홈즈가 놓친 사실을 짚어내고 진범의 정체를 암시하는 구절들을 지적하며 '셜록 홈즈에 대한 코난 도일의 증오가 작품에 반영되었다' 고 주장하는 것에는 동의한다. 다만 우리의 히어로(...) 셜록 홈즈를 위하여 흥미삼아 재반론을 펼쳐 볼 생각이다.

저자의 재해석이 틀렸다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저자가 이렇게 재해석을 했듯 나도 저렇게 재해석해 보았을 뿐이다. 이렇게 작품을 다른 관점에서 재해석해 보는 것도 문학을 재미있게 읽고 더욱 깊이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된다는 생각이 든다.


P.S. 글이 무슨 레포트 쓰는 기분이다(...)

Posted by 크리스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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