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 출판사 에우리피데스 전집 1권의 표지 모델이다. 나는 단국대학교출판부 버전으로 읽었지만... 역자가 같으니 뭐.)

(메데이아 신화와 관련된 지역들. 지도에 표시가 안 된 곳도 있고, 표시가 있어도 너무 작아서 내가 뽀샵으로 표시했다.)

우선 메데이아에 관한 신화를 아는 대로 좀 정리하면... 테살리아의 왕인 이올코스의 펠리아스가 조카 이아손에게 '황금 양털' 을 찾아오면 왕위를 물려 주겠다는 명을 내린다. 이아손은 황금 양털을 찾아 아르고 호를 타고 콜키스 - 지금의 조지아(그루지야) 지역 - 로 갔는데, 콜키스의 왕 아이에테스의 딸인 메데이아가 이아손에게 한눈에 반해 버린다. 족보를 따져 보면 메데이아는 태양신 헬리오스의 손녀이자 <오뒷세이아>에 나오는 키르케의 조카로, 마법에 능하여 이아손이 황금 양털을 찾도록 도와 주고 막판에 그를 따라 콜키스에서 도망친다. 그 와중에 추격자들을 따돌리기 위해 자기 남동생을 SALHAE 해서 시체를 토막쳐 바다에 뿌린다. 그리고 이올코스에 왔는데, 펠리아스는 사실 이아손이 자기 왕위를 빼앗을 거라는 신탁을 받아서 이아손을 멀리 쫓아버리려고 불가능한 미션을 준 거였고, 진짜로 이아손이 돌아오자 입을 싹 씻는다. 그러자 메데이아는 '펠리아스를 회춘시켜 주겠다' 며 펠리아스의 딸들을 속여 딸들이 펠리아스를 SALHAE 하게 만든다. 그리고서 이아손과 메데이아는 코린토스로 도망치는데, 코린토스의 왕 크레온 (오이디푸스의 뒤를 이은 테바이 왕 크레온과는 동명이인) 이 딸 글라우케를 이아손에게 주겠다고 하자 이아손은 옳다꾸나 하고 메데이아를 차 버린다. 빡친 메데이아는 독이 묻은 옷을 보내 글라우케와 크레온을 SALHAE 하고 아테나이로 도망쳐 아테나이 왕 아이게우스에게 의탁한다. 자식이 없던 아이게우스 사이에서 아들도 낳는데, 갑자기 아이게우스의 잃어버린 아들 테세우스가 갑툭튀하자 테세우스를 독이 든 술로 SALHAE... 하려다 실패하고, 아들을 데리고 도로 콜키스로 도망친다. 거기서 아버지의 왕위를 빼앗은 삼촌을 SALHAE 하고 아버지의 왕위를 되찾아 준 후 행복하게 살았다... 고 한다. 훗날 아들이 콜키스의 왕이 되고 나라 이름을 '메디아' 로 바꾸었다고 하며, 한편 이아손은 실의에 빠져 아르고 호 배 밑에서 자다가 썩은 뱃고물이 떨어지는 바람에 비명횡사(...)했다고 한다.

에우리피데스의 희곡 <메데이아>는 코린토스에서 버림받은 메데이아가 이아손에게 복수하는 부분을 바탕으로 한 것인데, 이 작품에서 메데이아는 글라우케와 크레온뿐 아니라, 이아손과의 사이에서 낳은 자신의 두 아들마저 자기 손으로 SALHAE 하는 것으로 그려진다 (위의 표지 그림이 그 장면을 그린 것이다). 원래 신화에서는 메데이아가 아들들을 시켜 글라우케에게 독이 묻은 옷을 선물로 전해 주게 했고, 분노한 코린토스 시민들이 아들들을 살해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고 하는데, 에우리피데스는 메데이아가 복수의 일환으로 이아손의 대를 끊고 가정을 무너뜨려 고통스럽게 살도록 만들기 위해 스스로 아들들을 살해하였다고 재해석한 것이다. 이 '복수를 위한 자식 살해'가 작품의 핵심이라 할 수 있다.


이런 복수에 대한 도덕적인 문제는 잠시 제쳐두고 보면... 작증에서 메데이아는 과거 시대, 특히 <일리아스> 같은 서사시에 묘사된 영웅들의 이미지를 상징하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메데이아는 '명성을 지키고 원수들에게 웃음거리가 되지 않기 위하여' 라는 말로 복수를 해야만 하는 이유를 밝히고, 복수를 위해 자식마저 살해하는 자기 파괴적 결정에 도달한다. 이는 <일리아스>에서 아킬레우스가 자신이 죽을 운명임을 알면서도 트로이아 전쟁에 뛰어들며, 명예를 위해서라면 고통도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 모습을 연상시킨다.

또한 메데이아는 자식 살해를 결행하기 직전, 유명한 독백을 통해 '자신의 '격정'이 '숙고'보다 강력하다' 는 대사를 읊는다. 이렇게 자신의 격정으로 인해 자신과 아들들을 고통으로 몰아넣는 결단은, 마치 <일리아스>의 첫 구절인 '분노', 아카이아 인들에게 헤아릴 수 없는 고통을 가져다준 아킬레우스의 분노에 대한 오마주인 것 같기도 하다. (어떤 신화에 따르면, 메데이아가 사후에 축복의 땅인 엘뤼시온으로 보내져 그곳에서 아킬레우스와 맺어졌다고도 카더라. 옛날에도 메데이아와 아킬레우스가 죽이 잘 맞는다고 생각한 건가?)

노래하소서, 여신이여! 펠레우스의 아들 아킬레우스의 분노를,
아카이오이족에게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고통을 가져다주었으며
숱한 영웅들의 굳센 혼백들을 하데스에게 보내고
그들 자신은 개들과 온갖 새들의 먹이가 되게 한
그 잔혹한 분노를! ...                                                                                            <일리아스>, I.1-5.


내가 얼마나 끔찍한 짓을 저지르려 하는지 나는 알고 있다.
그러나 격정이 나의 숙고熟考보다 더 강력하니,
격정이야말로 인간들에게 가장 큰 재앙의 원인이로다!                                                <메데이아>, 1078-1080.


그런데 메데이아가 <일리아스>의 영웅들과 다른 점은, 메데이아의 내면 갈등과 고뇌가 훨씬 더 극명하게 묘사된다는 것이다. <일리아스>의 영웅들은 명예를 위해서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 단순무식하고 평면적인 모습으로 묘사되는데, 이에 반하여 메데이아는 자식들을 죽이려는 결정적인 순간에 아이들의 눈을 보며 마음이 흔들리고, 다시 마음을 다잡으며 결행을 결심하는 복잡한 내면 심리를 긴 독백을 통해 보여 준다. '격정이 숙고보다 강력하다' 고 외치는 메데이아의 위 대사는 <일리아스>의 '분노'를 연상시키지만, 그 이면 깊숙이에 보이는 고뇌로 인해 메데이아의 분노는 더욱 묵직하고 처절하게 느껴진다.


<일리아스>와 관련하여 또 하나의 특기할 점은, 두 작품 속에서 보이는 신들의 모습이다. ,<일리아스>에서 인간의 행동과 운명은 신들에 의해 좌지우지되며, 트로이아 군과 아카이아 군의 전투의 향방은 두 편으로 나뉜 신들의 의중에 따라 결정된다. <일리아스>에서 인간사는 신들의 거대한 싸움의 투영에 불과하며, 인간은 신들의 놀이판 위를 움직이는 장난감에 불과한 것이다. (전에도 쓴 거지만...)

이들 두 신이 이렇듯 심한 불화로 만인에게 공통된 전쟁의
부술 수도 풀 수도 없는 밧줄을 잡고 양군의 머리 위에서
번갈아 끌어당기니, 이 밧줄이 많은 사람들의 무릎을 풀었다.                                     <일리아스>, XIII.358-360.

그런데 <메데이아>에서는 메데이아의 운명에 간섭하는 신들의 개입이 나타나지 않는다. 오히려, 막판에 메데이아는 '용이 끄는 수레'를 타고 아이들의 시신을 끌어안고서 이아손에게 저주를 퍼붓고 도망치는데, 이러한 신적인 도구가 메데이아를 돕기 위해 동원되는 것을 볼 수 있는 것이다. 또한 메데이아가 복수의 계획을 세우면서 결행 후 도망칠 곳을 물색하고 있을 때, 난데없이 아테네 왕 아이게우스가 갑툭튀해서 메데이아가 아테네로 망명을 해 온다면 받아 주겠다고 말하여 메데이아의 퇴로를 만들어 준다. 이 장면을 가지고 아리스토텔레스는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은 구성이 조낸 치밀하다' 며 최고의 비극이라 평가하는 한편 '<메데이아>의 뜬금없는 구성은 용서할 수가 없다' 며 깠다는데, 일각에서는 이 아이게우스의 갑툭튀를 뜬금없는 게 아니라 '부정한 이아손을 징벌하고 메데이아를 돕기 위한 신들의 응답' 이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카더라. 이렇게 보면 <메데이아>에서의 신들은 메데이아의 의도에 종속되어 메데이아를 간접적으로 도와 주는 듯이 보인다. 즉 <일리아스>에서의 인간과 신들의 관계가 역전되어, 인간이 주체가 되고 신들이 인간의 결정에 따르게 된 것이다.


또한 메데이아는 다른 비극의 주인공들과는 달리, 자신의 행동이 고통스럽고 비극적인 결과를 낳을 것임을 알면서도 스스로의 결정에 의해 비극적 운명을 선택한 캐릭터이다. 예컨대 다른 명작 비극인 <오이디푸스 왕>을 보면, 오이디푸스는 자신의 출생의 비밀을 밝혀냄으로써 비극에 빠지게 되나, 출생의 비밀을 밝히려는 자신의 시도가 비극을 가져올 것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그러나 메데이아는 긴 독백을 통해 자신의 내면 갈등을 폭풍처럼 발산하고, 자신이 하려는 행동이 끔찍한 짓임을 알고 있음에도 비극적 행위를 저지른다는 것에서 다른 비극 주인공들과 대조된다.

요컨대 메데이아의 모습은 <일리아스>의 영웅상을 환기하면서도, 동시에 신들의 영향을 축소시키고 주인공의 내면 갈등을 자세히 드러냄으로써, 인간의 자유 의지와 주체적인 선택을 강조하여 온전히 스스로의 결단으로 인하여 운명을 결정짓는 주인공의 모습을 보여 준다고 할 수 있겠다. (어떤 학자는 메데이아를 '자기 내부에서 일어나는 갈등을 의식하는 통일적이고 자율적인 존재로서의 자기를 충분히 의식하는 최초의 비극적인 인물' 이라 평가했다 카더라.)


그런데, <메데이아>에서 인간이 자신의 운명을 신이 아닌 자기 자신의 의지에 따라 결정하여 얻은 결과가, 자기 자식을 죽이는 것과 같은 비극을 불러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내 생각엔, 인간의 자유 의지의 중요성과 자유 의지가 가진 양면적인 힘을 강조하기 위하여 이런 부정적인 결과를 보여 주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또는 <일리아스>에서 인간의 운명을 뒤흔드는 것이 신들의 힘이었던 데에 반하여, <메데이아>에서는 그것을 인간 자신의 내면에 감추어진 비이성적인 충동으로 대체하여 보여 줌으로써, 인간이 가진 비이성적 측면이 인간의 행동에 미치는 영향과 그 파괴력을 신들의 불가해한 권능에 비유하려 했던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시대적으로 한~참 이후의 작품이긴 하지만, 전에 읽은 <에덴의 동쪽>에 이와 비슷한 구절이 있어 옮겨 본다.

... 그러나 '팀셸(timshel)'이라는 히브리어는 'Thou mayest(너는 할 수도 있을 것이다)로, 선택의 기회를 주는 단어입니다. 어쩌면 이것은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단어인지도 모릅니다. 선택의 길이 열려 있다는 말이니까요. 요컨대 책임을 인간에게 돌리고 있는 겁니다. ... 이 말은 인간을 위대하게 만들고, 인간을 신들과 동등한 위치에 올려놓습니다. 인간은 자신의 악한 행동이나 추잡한 행위 혹은 형제를 살상하는 잔인한 일에 있어서 중대한 선택권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죠.
                                                                                                            존 스타인벡, <에덴의 동쪽> 中



P.S. 이 글은 이번 학기 교양 강의 때 쓴 레폿을 적절히 다듬은 것이다. 읽은 작품 감상문이니까 블로그에도 옮겨 두는 게 좋겠다 싶어서... 뭐, 학기도 다 끝났고, 내가 쓴 글 내가 올리는 건데 문제는 없겠지?


Posted by 크리스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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