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뒷세우스의 10년 간의 항로. 출처는 여기.)

얼마 전에 <오뒷세이아>를 읽었는데, 인터넷에서 재미있는 것을 발견해서 글을 쓴다.

일단 <오뒷세이아>의 줄거리를 요약하면, 전쟁 끝에 트로이아를 함락시킨 오뒷세우스가 신들의 노여움을 사 고향에 돌아가지 못하고 10년 동안 바다를 떠돌다가, 마침내 귀향하여 아들과 충직한 하인 둘과 힘을 합쳐서, 자기 아내에게 집적대는 108명의 구혼자들과 108 : 死 로 맞짱을 떠서 모조리 SALHAE 하고 해피 엔딩을 맞는다... 는 이야기다.

그런데 인터넷을 돌아다니다가, <오뒷세이아>에서 묘사된 천문 현상과 상징을 갖고 오뒷세우스가 귀향한 날짜를 계산해낸 과학자들의 논문을 보게 되었다 ("Is an eclipse described in the Odyssey?"). 이걸 보고 감동을 먹어서(...) 블로그에 대충 요약해 보려 한다.


우선 <오뒷세이아> 마지막 즈음, 오뒷세우스가 구혼자들과 맞짱을 뜨던 날 일식이 일어났다는 것을 암시하는 대목이 있다.

...해는 하늘에서 / 사라지고 고약한 안개가 세상을 온통 뒤덮는구나.                         XX.356-357. (맞짱 D-Day)


이걸 갖고서 1920년대에 쇼흐랑 노이게바우어라는 사람이, 사료에 따르면 트로이아 전쟁이 기원전 1240~1125년 사이에 있었으니까 이 즈음 그리스 지역에 일식이 언제 있었는지 계산해 봤더니 '기원전 1178년 4월 16일' 이더라... 하는 결과를 냈다고 한다. 거기다가 위 링크의 논문을 쓴 학자들은 다음과 같은 근거를 추가했다.

1.

그는 줄곧 플레이아데스와 늦게 지는 보오테스 (목동자리) 와
사람들이 짐수레라고도 부르는 큰곰을 쳐다보고 있었다.                                              V.272-273. (맞짱 D-29)


오뒷세우스가 칼륍소의 섬(지도 참조)에서 뗏목을 타고 떠나면서 별을 보고 방향을 잡는 구절인데, 밤에 플레이아데스와 목동자리를 둘 다 볼 수 있는 때가 3월 아니면 9월이다. 그리고 <오뒷세이아>에서 긴 밤, 불, 외투 등 배경이 겨울임을 상징하는 말이 자주 나오므로, 배경이 늦겨울~초봄일 가능성이 높고, 따라서 3월이 유력하다. 그리고 목동자리가 보이기 시작하는 날이 2월 17일, 플레이아데스가 지는 날이 4월 3일 밤이니, 이 때는 2월 17일~4월 4일 사이일 것이다... 라는 것이다.

2.

...올해 안으로 오뒷세우스는 이곳에 돌아올 것이오.
이 달이 이울고 새 달이 차기 시작하면 말이오."                                                       XIX.306-307. (맞짱 전날)


오뒷세우스가 거지로 변장하고 자기 집의 상황을 염탐하러 와서는 걱정하는 아내 페넬로페를 안심시키는 장면이다. 이 말을 통해 오뒷세우스가 구혼자들을 쫓아내고 정체를 드러내는 때가 새 달이 차기 시작할 때, 즉 초승달이 뜰 때라는 것을 알 수 있고, 일식은 초승달이 뜨는 날에 일어나니 이는 앞의 일식 가설과도 연결된다. 

3.

이른 아침에 태어난 새벽의 여신의 빛을 알리기 위해
맨 먼저 나타나는 가장 밝은 별 (금성) 이 떠올랐을 때...                                                XIII.93-94. (맞짱 D-5)


오뒷세우스가 파이아케스족의 배를 타고 고향 이타케의 포르퀴스 항으로 갈 때, 새벽이 오기 전에 금성이 떴다는 구절이다. 이 계절에는 금성이 해보다 최대 2시간쯤 일찍 뜬다고 하는데, 논문을 쓴 학자들은 이 구절이 가리키는 날에 금성이 해보다 적어도 1시간 30분 먼저 떴다고 가정했다. 이렇게 하면 가능한 경우의 수가 대략 1/3 정도로 추려진다.

4.

"헤르메스야, 너는 다른 일들에서도 우리의 사자使者이니
참을성 많은 오뒷세우스의 귀향이라는 우리의 확고한 결정을
머리를 곱게 땋은 요정에게 알리거라.                                                                          V.29-31. (맞짱 D-34)


오뒷세우스가 오귀기에 섬의 마녀 칼륍소에게 잡혀 살고 있을 때, 신들이 회의를 해서 오뒷세우스를 집에 보내 주기로 합의를 보고 헤르메스를 시켜 칼륍소에게 전하도록 하는 구절이다. 여기서 헤르메스는 올륌포스로부터 서쪽 멀리 있는 (지도 참조) 칼륍소의 섬까지 다녀오는데, 헤르메스는 메르쿠리우스, 즉 수성Mercury을 가리키니까, 학자들은 이 구절이 상징하는 것이 '수성이 가장 서쪽에서 뜨는 날' 이라고 추측하였다. 그럴싸한데?

5.

그러나 대지를 흔드는 통치자 포세이돈이 아이티오페스족의 나라에서
돌아오던 길에 멀리 솔뤼모이족의 산들에서 그 (오뒷세우스) 를 발견했다.                      V.282-283. (맞짱 D-11)


포세이돈이 아이티오페스족의 나라(에티오피아)에 다녀오다가 오뒷세우스가 집으로 가는 걸 보고, '신들이 나만 빼놓고 오뒷세우스를 보내기로 합의를 봤구나' 라며 빡쳐서(...) 오뒷세우스의 뗏목을 뒤집어엎는 대목이다. 포세이돈은 넵튠, 즉 해왕성Neptune인데, 해왕성은 19세기에 발견됐으니 이게 해왕성일 리는 없고... 해서 이걸 어떤 학자가, 그리스 사람들은 포세이돈이 지진을 일으키는 신이라 믿었으니 포세이돈은 지구의 운동을 상징하기도 하며, 이 구절에서 포세이돈이 남반구에서 적도를 지나 북반구로 올라왔다는 소리는 즉 지구가 돌아서 태양이 적도를 지나는 춘분이 되었음을 상징한다고 추측했다 (정확히 말하면 현대의 에티오피아는 북반구긴 하지만, 옛날이니까). 천잰데?


즉 정리하면, 맞짱이 벌어진 날 초승달이 떴을 것이고, 맞짱 5일 전 금성이 태양보다 한 시간 반 먼저 떴고, 수성이 가장 서쪽에서 뜬 날이 맞짱 34일 전이었고, 춘분이 맞짱 11일 전이었다는 것이다. 그걸 가지고 표를 만들어서 네 조건을 전부 만족하는 날을 찾아봤더니, 앞서 말했던 '기원전 1178년 4월 16일' 에서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더라... 는 결론이 나왔다고 한다.

첫째 줄 - 초승달이 뜬 날
둘째 줄 - 맞짱 5일 전 금성과 태양이 뜬 시각과 시각차 (금성이 저녁에 떴을 경우엔 쓰지 않음)
셋째 줄 - 수성이 가장 서쪽에서 뜬 날과 '맞짱 34일 전'과의 오차 일수
넷째 줄 - 춘분 날




이걸 보고, 작품에다 이렇게 디테일한 천문학적 설정을 깔아 놓은 작가의 혼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그리고 이걸 추리하고 계산해낸 과학자들의 근성도... 네 조건이 간지나게 정확히 일치하는 표를 보자 정말로 카타르시스가 느껴질 지경이었다(...) 예전에 단테의 <신곡>을 읽을 때도, 작중에 여러 가지 천문학적 묘사가 나온다든가, 지옥의 사탄의 크기 묘사를 보고 주석가가 '계산해 보니까 사탄 크기가 2000피트임' 이라고 계산해 놓은 걸 보고 신기했었는데, <오뒷세이아>에서도 이런 걸 보게 되어 신기했다. 과학 지식이 있으면 문학 감상에도 도움이 된다는 걸까.

Posted by 크리스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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