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far, from eve and morning
 And yon twelve-winded sky,
The stuff of life to knit me
 Blew hither: here am I.

Now - for a breath I tarry
 Nor yet disperse apart -
Take my hand quick and tell me,
 What have you in your heart.

Speak now, and I will answer;
 How shall I help you, say;
Ere to the wind's twelve quarters
 I take my endless way.

A. E. Housman, <A Shropshire Lad>, XXXII. (링크)


어슐러 K. 르 귄의 초기 단편들을 모은 단편집이다. 제목은 <슈롭셔의 젊은이>란 시에서 따 온 것이라 하며 (책 첫머리에 이 시가 인용되어 있다), 뭔가 멋있어 보여서 인터넷에서 찾아 위에 옮겨 보았다(...). 책에는 전부 17편의 단편이 실려 있으며, 전반적으로 환상적이고 몽환적인 분위기의 이야기들이다. 개인적 감상으론 <물건들>, <제국보다 광대하고 더욱 느리게>, <오멜라스를 떠나는 사람들>이 마음에 들었다.



<물건들>은 환상적인 동시에 외롭고 적막한 분위기의 단편이다. 종말 (그것이 어떤 것인지는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고 있지는 않지만) 이 다가오는 속에서 바다 저편의 '섬들'을 향해 벽돌로 둑길을 쌓는 벽돌공의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 다른 사람들은 벽돌공에게 '가진 물건들로부터 자유로워져야 종말의 세상 너머로 갈 수 있다'고 말하지만, 벽돌공은 자신이 가진 벽돌을 전부 바다의 둑길에 쌓아버리고 난 후에, 자기 곁에 머물러 준 과부의 손을 잡는 것을 선택했다. 그리고서 그녀와 함께 '섬들'로 향한다. 비록 자세한 배경 상황 설명이 없어 이해하기는 어려웠지만, 이 이야기는 왜인지 기억에 남는다.

<제국보다 광대하고 더욱 느리게>는 타인의 감정을 느낄 수 있는 능력을 가진 '감정 이입자'를 중심으로 한 이야기이다. 마음을 닫은 감정 이입자가 타인과의 진실한 소통을 통해 점차 마음을 열고, '감정을 가진 숲'의 두려움을 가라앉히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인간이 아닌 존재와의 소통, 그리고 인간과 인간 사이의 소통의 중요함을 이야기한다는 점에서 <솔라리스>가 연상되기도 했다.

... 도미코처럼 다른 사람들은 오즈딘은 무뚝뚝하고 잔인한 이기주의자라고 생각했지만 그건 오즈딘의 실체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 스스로가 만들어 낸 덫일 수도 있었다. 사람들은 우리를 만들어 그 안에 오즈딘을 가두었고, 우리에 갇힌 유인원이 그러하듯, 오즈딘은 창살 밖으로 오물을 집어던졌다. 만약 대원들이 오즈단을 처음 만났을 때 신뢰했다면, 오즈딘을 사랑할 수 있을 만큼 대원들이 강했다면, 그랬다면 대원들 눈에 오즈딘은 어떻게 보였을까?
 아무도 그렇게 하지 않았고, 이제는 너무 늦었다. 시간이 주어진다면, 홀로 있을 수만 있다면 도미코는 오즈딘과 천천히 감정의 공명을, 신뢰의 화음을, 조화를 쌓아 나갈 수 있겠지만 시간이 없었고 해야 할 일이 있었다. 그토록 위대한 일을 키워 나갈 만한 여유가 없었고, 대원들은 동정과 연민과 작은 사랑을 주고받으며 그럭저럭 버텨 나가야만 했다. ...
                                                                                                                                           p.367.

... 오즈딘은 두려움을 자기 안에 받아들여 초월해 버렸다. 오즈딘은 자신을 외계에 스스럼없이 내던져 버렸고 거기엔 악한 것이 들어찰 수 없었다. 오즈딘은 다른 존재를 사랑하는 법을 배웠고 그러므로 자신을 내던질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이성의 어휘로는 쓸 수 없는 이야기였다.
 극한 지방 탐사팀 대원들은 생의 거대한 식민지를, 꿈꾸는 침묵에 둘러싸인 곳을, 대원의 존재를 반쯤은 자각하면서도 대원들에게 철저히 무관심한 고요 속을 관통해 나무 아래를 걸었다. 시간이 없었다. 거리는 문제 되지 않았다. 세계가 아닌 우리에게 여유와 시간이 있었더라면…….
 행성이 햇빛과 위대한 어둠 사이에서 돌았다. 겨울의 바람 그리고 여름이 고운 꽃가루를 불어 조용한 바다 위로 날려보냈다.
                                                                                                                                           p.378.

그리고 <제국보다 광대하고 더욱 느리게>란 제목은 <수줍은 연인에게 To His Coy Mistress>라는 시의 한 구절에서 따 온 것이라 한다. 위키신의 설명을 보니 이 시는 '인생은 짧으니 우리 서로 사랑하자'는 줄거리의 시라고 카더라. 작품의 내용과 묘하게 어울리는 듯하다. 

<오멜라스를 떠나는 사람들>은 도덕적인 딜레마에 관한 이야기이다. 오멜라스는 일종의 유토피아 같은 도시이지만, 이 도시의 행복은 한 아이의 고통이 있어야만 성립된다는 계약이 존재한다. 오멜라스 사람들 모두가 도시의 지하실 깊숙한 곳에 비참하게 고통받는 아이가 한 명 있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 아이를 구하려 하면 오멜라스의 수많은 시민들이 누리는 행복은 사라지게 된다는 사실 앞에 아이의 고통에서 눈을 돌린다. 그러나 몇몇 사람들은, 고민 끝에 오멜라스를 떠나는 것을 선택한다. 이 이야기는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과도 닮아 있는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의 행복을 위해 한 사람을 속죄양으로 삼아도 되는가' 라는 문제에 내 이성은 답을 내리지 못하고 있지만, 감성은 이에 단호히 반대한다. 그렇지만 과연 내가 오멜라스를 떠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지금 이 세상에서 군말 없이 살고 있는 걸 보면, 아마도 나는 오멜라스를 떠나지 못할 것 같다. 중2병 돋네


그리고 작품 외적인 얘기로, 작가가 자신의 작품을 설명하기 위해 '심리 신화 psychomyth' 라는 개념을 만들어선 이 단어를 여러 번 써먹는데, 그 의미가 명확히 정의되지 않고 서문에서 대충 설명될 뿐이라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이걸 알면 작품 이해에 도움이 될 듯 싶어 나름 구글링을 해 봤지만 쓸 만한 정보가 나오질 않아서... 르 귄의 작품을 많이 읽어야 이해가 될까 싶다.


그리고 이 책을 읽고 한 가지 배운 게 있다. 역자가 '~와 ~ 들' 처럼 여러 가지를 나열할 때, 책 전체에 걸쳐서 '들'을 붙여 쓰지 않고 띄어 쓰는 경우가 자주 보였다 (e.g. 상품과 소유품  들은...). 나는 당연히 '들'을 붙여 쓰는 게 맞다고 알고 있었고, 그래서 읽는 내내 마음 속으로 역자를 욕했는데(...) 블로그에 글을 쓰면서 내가 알고 있는 맞춤법이 맞는지 확인하기 위해 검색을 해 봤더니 '나열'의 경우 앞에 나열한 것들 전체가 복수임을 나타낼 때에는 '들'을 띄어 쓰는 게 맞다고 한다 (링크). 역자님 죄송합니다(...)


P.S. 구글링을 하다가 우연히 '바람의 열두 방향' 이라는 제목의 노래를 찾았다. 너무 조용해서 내 취향에는 좀 안 맞는 듯하지만(...) 혹시 궁금하신 분은 들어 보시길. (가사를 찾으려고 별 짓을 다 했는데, 마이너한 가수인지 도통 검색이 안 되더라 -_-)

風の12方位 - 栗原ミチオ


Posted by 크리스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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