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 지역의 위치와 인물들의 출신지를 표시한 지도. 자주색은 그리스 연합군, 붉은색은 트로이아 군. 출처는 여기.)


기원전 1200년경의 트로이아 전쟁을 배경으로 하는 서사시다. '트로이아 전쟁' 하면 트로이 목마가 유명하지만 <일리아스>에선 나오지 않고(...) 트로이아 전쟁의 후반부 일부인, 그리스 군에 역병이 창궐하는 것에서부터 하여 트로이아 장수 헥토르의 죽음까지를 그린다.


워낙 유명한 고전이니 깊은 의미와 다양한 해석이 있겠지만, 내가 이해한 것만 이야기해 보면... '운명'에 의해 벌어지는 비극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이야기의 주인공 위치에 있는 그리스 군의 장수 아킬레우스는 강력한 전사로 불멸의 명성을 누리는 대신 단명할 운명을 타고났다. <일리아스>는 아킬레우스가 적장 헥토르를 죽이는 것으로 끝나지만, 그가 트로이아 전쟁이 끝나기 전 전사할 것임을 여러 구절을 통해 암시한다. 아킬레우스도 자신의 운명을 잘 알고 있으며, 그는 헥토르의 시신을 돌려받으러 온 헥토르의 아버지 프리아모스와의 대화에서 헥토르뿐 아니라 자신도, 프리아모스도 비참한 운명을 맞을 것임을 암시적으로 내비친다.

... 아무리 괴롭더라도
우리의 슬픔은 마음속에 누워 있도록 내버려둡시다.
싸늘한 통곡은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을 테니까요.
그렇게 신들은 비참한 인간들의 운명을 정해놓으셨소.
괴로워하며 살아가도록 말이오. 하나 그분들 자신은 슬픔을 모르지요.          XIV.522-526.


또한 아킬레우스가 죽을 것이라는 운명과 마찬가지로, <일리아스>에서 트로이아의 함락은 그려지지 않지만 대신 트로이아가 함락될 운명임을 여러 곳에서 암시하고 있다. 적장 헥토르 역시 트로이아가 신들의 미움을 받아 멸망할 운명임을 알고 있다. 자신의 운명이 비극으로 끝나고 트로이아는 함락될 것임을 알고 있으면서도 싸움터에 나서야 하는 점에서 그는 아킬레우스와 마찬가지이다.

나는 물론 마음속으로 잘 알고 있소.
언젠가는 신성한 일리오스와 훌륭한 물푸레나무 창의
프리아모스와 그의 백성들이 멸망할 날이 오리라는 것을.         VI.447-449.


이러한 운명은 신들이 정해 놓은, 인간으로서는 바꿀 수 없는 것이다. 인간들이 트로이아 성을 놓고 싸우는 동안 신들도 그리스 연합군 또는 트로이아의 편에 서서 알력 다툼을 벌이며, 이 신들의 다툼에 따라 지상의 인간들의 전황도 이리저리 흘러간다. 신들이 트로이아 편에 서면 그리스 연합군은 엄청난 피를 흘리고, 또 어떤 신들이 그리스를 도우면 트로이아 군이 패퇴해 물러간다. 신이 한 영웅을 돕기로 마음먹으면 날아오는 투창도 그를 비켜가며, 한 영웅을 저주하면 갑옷 끈이 풀리고 창이 그의 몸을 꿰뚫는다. <일리아스>에서 인간사는 신들의 거대한 싸움의 투영에 불과하며, 인간은 신들의 놀이판 위를 움직이는 장난감에 불과한 것이다.

이들 두 신이 이렇듯 심한 불화로 만인에게 공통된 전쟁의
부술 수도 풀 수도 없는 밧줄을 잡고 양군의 머리 위에서
번갈아 끌어당기니, 이 밧줄이 많은 사람들의 무릎을 풀었다.          XIII.358-360.

... 우리는 젊어서부터
늙을 때까지 그리고 마지막 한 사람이 쓰러질 때까지
비참한 전쟁의 실타래를 감도록 제우스께서 정해주셨으니 말이오.          XIV.85-87.


<일리아스>에서의 인간은 이성과 자유 의지를 갖고 있지만, 이들이 어떤 행동을 하든 인간은 신들이 미리 정해 놓은 운명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한다. 인간은 운명 (예컨대 트로이아의 패배) 을 인식하더라도 그것을 피할 수가 없으며, 그저 운명이 오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는 약한 존재이다. 운명에서 오는 비극의 원인이 바로 여기 있고, 따라서 인간은 지상의 모든 생물 중에서 가장 불행하다고도 할 수 있다. (이러한 견해는 지난번에 감상을 쓴 <에덴의 동쪽>과는 완전히 상반된다. 이 때문에 이래저래 고민이 많았다... -_-;;)

저런, 가련한 것들! 늙지도 죽지도 않는 너희를
어쩌자고 우리가 필멸의 펠레우스 왕에게 주었던고?
불행한 인간들 사이에서 고통당하게 하기 위함이었던가?
대지 위에서 숨쉬며 기어 다니는 만물 중에서도
진실로 인간보다 더 비참한 것은 없을 테니까.          XVII.443-447.




그러나, 이렇게 인간은 운명을 바꿀 수도 벗어날 수도 없이 그저 운명을 기다릴 수밖에 없는 존재이지만, <일리아스>의 영웅들은 자신들에게 주어진 비극적 운명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고뇌하거나 저항하지 않고 현재에 충실하여 전쟁터에서 용감히 싸울 뿐이다. 신들이 트로이아의 편을 들어 트로이아 군이 그리스 군의 진영으로 쇄도해 오더라도, 그리스 군의 영웅들은 신들이 그리스의 편을 들지 않음을 한탄할 뿐, 결코 포기하거나 도망치는 모습을 보이는 일 없이 트로이아 군에 맞서 싸운다. 트로이아의 함락을 마음 속으로 체념하고 있는 헥토르도, 자신이 이 전쟁에서 전사할 것임을 알고 있는 아킬레우스도 그러하다. 이런 면에서 <일리아스>는 비극인 동시에, 그 비극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비극 속에서 당당히 싸우는 영웅들을 그리는 영웅담이라고 할 수 있다.

친구여! 만일 우리가 이 싸움을 피함으로써
영원히 늙지도 죽지도 않을 운명이라면,
나 자신도 선두대열에서 싸우지 않을 것이며
또 남자의 영광을 높여주는 싸움터로 그대를 보내지도 않을 것이오.
하나 인간으로서는 면할 수도 피할 수도 없는 무수한 죽음의 운명이
여전히 우리를 위협하고 있으니 우리가 적에게 명성을 주든
아니면 적이 우리에게 명성을 주든 자, 나갑시다!                                    XII.322-328.

"크산토스여! 내게 왜 죽음을 예언하는가? 정말 너답지 않구나.
내가 사랑하는 부모님과 멀리 떨어진 이곳에서 죽을 운명임은
나도 잘 아는 바다. 그렇다 하더라도 트로이아인들에게 전쟁이라면
신물이 나도록 해주기 전에는 나는 결코 쉬지 않으리라."                          XIX.420-423.




읽으면서 <삼국지>와 유사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제갈량이 아무리 날고 기어도 천하의 흐름을 거스르지 못하고 오장원에서 죽듯, 헥토르가 아무리 분전해도 트로이아는 함락될 것이며, 아킬레우스도 결국 전사할 것이라는 비극적인 구조가 깔려 있다는 것이 비슷하다. 또한 둘 다 영웅들의 활약을 중심으로 한 전쟁 이야기라는 점도 비슷하고, 각각 동서양의 최고 고전문학이기도 하고... (시대적으로는 <일리아스>가 <삼국지>에 비해 크게 앞선다. 찾아보니 쓰인 시기가 <일리아스>는 기원전 9세기, <삼국지>는 명나라 때인 14세기이며, 배경인 트로이아 전쟁은 기원전 12세기고 삼국 시대는 기원후 3세기...)


  (명작 <제갈공명전>이 떠오른다.)


<삼국지>처럼 전쟁 이야기라 전투 묘사 (특히 헥토르와 아이아스의 일기토가 기억에 남는다) 가 많으며 속도감이 있어 생각보다 지루하지 않다. 고전인 만큼 굉장히 지루하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꽤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다만 난처한 것은 사람 이름이 엄청나게 나온다는 것... 네임드 장수들에게 썰리는 듣보잡 엑스트라들 이름도 잔뜩 나오고, 신들 이름도 많이 나오고, 한 사람을 이름 외에도 누구누구의 아들, 또는 누구누구의 손자, 또는 별명 등 여러 가지로 부르는 등, 거의 러시아 문학 수준의 헷갈림을 선사한다. 다행히 책 뒤에 주요 인명, 가계도가 있긴 하지만... 그래도 헷갈린다. 서양인들도 <삼국지>를 읽으면 이렇게 헷갈리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적장들끼리 마주치면 '오오 누구누구의 자손인 누구누구여. 그대의 아버지는 어쩌구저쩌구...' 하면서 상대방의 가계도를 줄줄 읊는데, 이런 게 나오면 특히 짜증난다. 이런 얘기 할 시간에 그냥 빨리 찔러 버렸으면 하는 게 내 솔직한 심정이다... -_- 아 썅 그냥 빨리 좀 싸우라고!! '만화에서 변신 중일 때는 공격하지 않는다' 처럼 '서사시에서 가계도를 읊을 때는 공격하지 않는다' 같은 암묵의 룰 같은 게 있는 건가? 아니면 주인공 보정 같은 건가?

Posted by 크리스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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