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각에 인간은 정신적으로나 물질적으로 자신이 소유한 모든 것들을 벗어던진다고 해도 끝내 괴로워해야 할 몇 가지의 작은 죄들을 마음 한구석에 감추고 있는 것 같소. 그것들만은 절대 잃어버리지 않는 거죠."

                                                                                                                                    1권, p.307


성경의 카인과 아벨 이야기를 모티프로 한 소설로, 카인과 아벨의 갈등 구조를 20세기 초 캘리포니아의 아론과 칼 형제에게 투영함으로써 인간의 원죄 의식, 선악 사이에서의 갈등, 죄의 극복을 보여 준다.

아론은 잘 생긴 외모에 선한 성품을 갖고 있으며, 동생 칼 (영화 <에덴의 동쪽>에서 제임스 딘이 칼 역을 맡았다 카더라) 은 질투심이 강하고 다소 사악한 성격을 갖고 있다. 이들의 어머니인 캐시는 아론과 칼 쌍둥이를 낳은 후 아버지 애덤 트래스크를 총으로 쏘고 도망쳐 시내에서 유곽을 운영하고 있으며, 아버지 애덤은 이 사실을 숨기고 중국인 하인 리와 함께 아이들을 키워 왔다. 칼은 1차 대전 때 콩 값이 오르는 것을 이용해 콩 장사로 돈을 벌고 이 돈을 아버지 애덤에게 드리지만, 애덤은 전쟁의 혼란을 이용해 부당하게 돈을 벌었다고 생각해 칼이 주는 돈을 거절한다. 자신의 성의가 아버지에게 거절당하자 그간 느끼던 아론에 대한 질투심이 폭발해, 칼은 우연히 알게 된, 어머니가 자기들을 버리고 유곽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론에게 알린다. 순수하고 이상적인 성격의 아론은 큰 충격을 받아 그 길로 군에 입대하여 결국 전사하고 만다. 애덤은 아론이 전사했다는 소식에 쓰러져 버리고, 자기가 아론을 죽인 것과 다름없다고 고백하는 칼에게 '팀셸...' 이란 말을 남기고 숨을 거둔다.

이 줄거리는 카인과 아벨 이야기와 무척 유사하다. 아론Aron, 칼Caleb의 머리글자는 아벨Abel, 카인Cain과 같고, 신이 카인의 공물을 거절한 것과 애덤이 칼의 돈을 거절한 것, 카인이 아벨을 죽였듯 칼이 아론을 죽게 만든 것, 신이 카인을 에덴의 동쪽으로 추방하며 '카인을 죽이는 자는 일곱 배의 벌을 받으리라' 고 '카인의 낙인'을 찍은 것처럼 애덤이 칼에게 '팀셸'이란 말을 남긴 것 등... (물론 성경과 다른 점도 많다. 예를 들어 성경에선 카인이 형인 반면 칼은 동생이다) 기독교 신자가 아닌 사람들은 카인과 아벨 이야기를 잘 모를 수도 있겠지만 (나처럼), 책 중반쯤 이 이야기가 나오는 창세기 4장이 그대로 인용되기 때문에 몰라도 알게 된다(...)


여하간 저 '팀셸'이란 단어가 작품의 전부나 마찬가지라고 할 정도의 의미를 갖고 있는데, '팀셸'이 무엇인지는 애덤 트래스크와 리, 이웃 새뮤얼 해밀턴의 대화에 나온다.

 "흠정역 성서에는 이렇게 쓰여 있더군요. '너는 죄를 다스릴 것이다.' 라는 구절이었어요. 이 말은 카인이 죄를 이겨 내리라는 일종의 약속이었기 때문이에요. 그 후 미국 표준성서 한 권을 구입했어요. 그런데 이 책에는 이 구절이 다르게 번역되어 있더군요. '너는 죄를 다스려라.' 이건 큰 차이입니다. 이것은 약속이 아니라 명령이에요. 그래서 곰곰이 생각해 봤지요. 도대체 원전에 어떻게 쓰여 있기에 이렇게 다른 번역이 나왔을까 궁금했어요.

 미국 표준성서에는 인간에게 죄를 저지르고 싶은 충동을 극복하라고 '명령'을 내려요. 여기서 죄는 무지로 볼 수 있죠. 그런데 흠정역 성서에는 '너는 죄를 다스릴 것이다.'라고 약속을 하는 것으로 번역이 되어 있어요. 그러니까 인간이 확실하게 죄를 극복할 것이라는 뜻이지요. 그러나 팀셸(timshel)이라는 히브리어는 'Thou mayest (너는 할 수도 있을 것이다)'로, 선택의 기회를 주는 단어입니다. 어쩌면 이것은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단어인지도 모릅니다. 선택의 길이 열려 있다는 말이니까요. 요컨대 책임을 인간에게 돌리고 있는 겁니다. 

 교과서나 교회에서 '너는 다스려라.' 라는 말에서 명령조를 느끼고, 그 말에 복종하는 사람이 수백만 명이나 됩니다. 그리고 '너는 다스릴 것이다' 라는 글 속에서 신의 예정설을 느끼는 사람들이 또 수백만 명 있습니다. 인간이 어떤 행동을 한다고 해도 미래를 좌지우지할 순 없다는 뜻이지요. 하지만 '너는 다스릴 수도 있을 것이다.' 하는 말은 다릅니다! 이 말은 인간을 위대하게 만들고, 인간을 신들과 동등한 자리에 올려놓습니다. 인간은 자신의 약한 행동이나 추잡한 행위 혹은 형제를 살상하는 잔인한 일에 있어서 중대한 선택권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죠."

                                                                               번역의_중요성.txt       2권, pp.60-65에서 발췌, 요약


즉 '팀셸'은 인간의 자유 의지를 상징하며, 인간은 자신의 의지에 따른 선택을 통해 죄를 극복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닌 존재임을 나타내는 것이다. 인간은 명령에 복종함으로써 구원받는 것이 아니며, 정해진 운명을 거스를 수 없는 것도 아니고, 오로지 자신의 의지와 선택을 통해 자신의 죄를 극복하고 위대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작중 등장하는 주요 인물들은 각자의 '원죄'를 지니고 있다. 애덤은 무척 선한 사람으로 묘사되지만 그의 재산은 아버지가 사기를 쳐 모은 재산을 물려받은 것이며, 또한 자식들에게 어머니가 죽었다고 거짓말을 해 진실을 숨겼다. 아론은 순수하고 이상적인 성격으로 성직자가 되기를 꿈꾸지만, 아버지를 배신하고 타락한 어머니라는 굴레를 지고 있으며 이것을 알게 되자 진실을 감당하지 못해 파멸한다. 칼은 어머니의 성정을 물려받아 사악한 성격을 갖고 있으며, 이 탓에 형과 아버지를 죽게 만든다. 하지만 리와 애덤은 이런 칼을 선한 길로 이끌기 위해 노력한다.

 "사람을 이해한다는 것에 대해 말씀하시려는 것 같군요. 나는 어머니가 왜 도망을 쳤는지 알기 때문에 어머니가 미워요. 나는 알 수 있어요. 내 안에 어머니와 닮은 부분이 존재하니까요."
 그는 고개를 떨군 채 비통한 목소리로 말했다.
 리가 벌떡 일어나며 소리쳤다.
 "그만두지 못하겠니! 내 말 안 들려? 내 앞에서 그런 모습은 보이지 마라. 물론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 누구나 그럴 수 있으니까. 하지만 너에겐 다른 면도 있어. 나를 봐! 고개 들고 나를 보란 말이야! ... 너는 다른 일면도 갖고 있단 말이야. 내 말을 들어! 너는 자신에게 다른 일면이 없는지 스스로 자문해 보지도 않았겠지? ... 자, 내 얼굴을 똑바로 보고 기억해 둬. 네가 무슨 짓을 하든 그건 네가 하는 짓이지, 네 어머니가 하는 게 아니야."

                                                                                                                               2권, pp.341-342


위와 같은 칼과 리의 대화나, 애덤이 죽기 전 남긴 '팀셸'이란 말 등... 칼은 비록 악하고 죄를 지었지만, 최후에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선한 길로 가고자 하는 의지를 보였기에, 그에게는 아직 희망이 남아 있는 것이다. 칼은 '스스로의 의지와 선택을 통한 죄의 극복' 이라는 주제를 가장 잘 드러내는 인물이라 할 수 있겠다.


작품의 중심이 되는 아론과 칼 형제의 이야기 말고도 애덤과 동생 찰스의 이야기, 새뮤얼 해밀턴 집안 인물들의 이야기, 애덤과 캐시의 이야기, 리의 이야기 등 여러 가지 이야기가 얽혀 있는데, 이런 다양한 인물들의 모습을 통해 생각할 꺼리를 많이 던져 주는 작품이다. 나는 능력이 부족해 잘 이해하지 못했지만... -_-  아무래도 성경에 관한 지식이 있으면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듯하다. 하여간 이리저리 곱씹어 볼 요소가 많은 작품이라 생각된다.


그리고 이번에도(...) 한 가지 지적할 건덕지가 있는데, 2권 중간쯤 이런 구절이 나온다.

미국은 전쟁에 대해 두려움과 매력을 동시에 느끼며 어느 틈엔가 그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사람들은 거의 육십 년 동안이나 몸이 떨리는 전쟁의 흥분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스페인 내전은 전쟁이라기보다는 원정에 가까웠다. 윌슨은 참전하지 않겠다는 공약을 내세워 그해 11월 대통령에 재선되었지만, 그와 동시에 강경책을 쓰라는 압력을 받았다. 강경책이란 당연히 전쟁을 의미했다.                                                                   p.393


이 소설의 배경은 1차 대전 때이고 윌슨은 1차 대전 때 대통령이니, 여기서 말하는 '전쟁'은 빼도 박도 없이 1차 세계 대전이 틀림없는데... 내가 알기로 스페인 내전은 2차 대전 무렵이었고 미국과도 별 상관 없었는데? 원문을 인터넷으로 찾아보니 이랬다.

The nation slid imperceptibly toward war, frightened and at the same time attracted. People had not felt the shaking emotion of war in nearly sixty years. The Spanish affair was more nearly an expedition than a war. Mr. Wilson was re-elected President in November on his platform promise to keep us out of war, and at the same time he was instructed to take a firm hand, which inevitably meant war.


원문은 'The Spanish affair' 인데, 구글신의 도움을 빌어 찾아보니 이건 미국-스페인 전쟁(링크1 링크2)을 뜻하는 것 같다 (역사를 잘 모르니... 찾아보기 전엔 이런 전쟁이 있는 줄도 몰랐다 -_-;;). '60년 동안 전쟁을 느끼지 못했다'는 건 미국 남북 전쟁이 1860년쯤 있었으니 남북 전쟁으로부터 60년쯤 지났다는 거고, 그 사이에 미국-스페인 전쟁이 있긴 했지만 규모가 비교적 작아서 사람들의 기억에 크게 남지 않았다는 말인 듯하다. 하여튼 스페인 내전은 1930년대에 벌어진 전쟁이니 분명히 아니다(...)




P.S. 요즘 블로그에 글 올리는 게 뜸한데... 복학하면 글 쓰기 더 힘들어질 듯 -_-  가끔씩이라도 계속 글을 써야겠다.

Posted by 크리스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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