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 전화.

생각 2011. 1. 6. 15:53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지만, 내가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직업이 하나 있다. 시도 때도 없이 전화벨을 울리는 텔레마케터가 바로 그것이다.

 우리 어머니는 전화 교환원으로 일하시는데, 밤에 근무하기 때문에 저녁에 출근하고 아침에 퇴근하여 낮에는 잠을 주무신다. 이러다 보니 우리 가족은 대낮이라도 집안에서 조용히 지내는 데 익숙해졌고, 옆집 애들이 떠드는 소리라든가 시끄러운 선거 유세라든가 난데없이 울리는 광고 전화라면 치를 떨게 되었다. 작년에 이사를 옴으로써 꼬맹이들의 괴성과 비명에서는 벗어났고, 선거 유세는 며칠만 창문 꼭 닫고 살면 버틸 만하지만, 마치 저격수처럼 집안의 정숙을 급습하는 광고 전화의 마수에서는 도저히 빠져나올 수가 없다.

 이렇게 반론하는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다. 광고 전화가 싫으면 집 전화를 없애고 휴대폰을 진동으로 해 놓으면 되는데 뭘 그리 호들갑이냐고. 그러나 이 논리에는 결함이 있다. 집 전화가 있다고 해서 그것이 광고 전화를 받기 위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게다가 우리 어머니처럼 휴대폰이 없는 사람이 아직도 남아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선 안 된다.


 텔레마케터들은 우리가 전혀 관심도 없고 알고 싶어하지도 않는 정보를 기를 쓰고 알려 주려는 악랄한 자들이다. 그들의 직업 활동에는 필연적으로 타인의 고통이 수반된다. 그들이 직무의 일환으로써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면 전화벨의 소음이 그의 귀를 괴롭히고, 괴로움에서 벗어나려면 전화를 받으러 움직여야만 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신의 의견을 관철하기 위하여 전화벨을 무기로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을 협박하는 것이다. 그들의 존재 자체가 타인의 고통에 기반하여 성립할 수밖에 없는 것이라는 본질상 그들은 악마이다. 악마는 때론 아귀처럼, 중요한 정보나 반가운 소식이라도 있는 것처럼 전화벨을 울려 우리를 유혹하지만, 희망찬 마음으로 전화를 받은 우리의 기대가 고작 보험이니, 부동산 투자니 하는 하찮은 건덕지에 지나지 않음을 깨닫게 함으로써 우리를 실망과 좌절의 나락으로 던져넣는다.


Non isperate mai veder lo cielo:                      천국을 보리라는 희망 따위 모두 버려라.
i' vegno per menarvi a l'altra riva                     너희들을 저편으로, 영원한 어둠으로
ne le tenebre etterne, in caldo e 'n gelo.           열기와 냉기 속으로 데려가려 내가 왔노라.

                                                                                                          단테, <신곡> 지옥편, III.85-87.


 그들과 우리 사이의 관계는 사악한 신과 그 피조물의 관계와도 같다. 만일 그들이 우리에게 무언가를 알려 주고자 친히 전화를 내리신다면, 우리는 계시를 청취하기 위하여 황급히 수화기를 받아들어야만 한다. 우리가 무례하게도 그들의 호의를 무시했다가는 영원히 울리는 전화벨 소리라는 형벌이 기다리고 있기에, 그 계시가 무엇이든 우리는 계시를 거부할 수조차 없다. 설사 우리가 화장실에 있다든가 잠을 자고 있다든가 하더라도, 그들의 전화는 자비를 베풀지 않는다. 그들은 우리가 언제라도 계시를 받을 수 있도록 항상 깨어 있기를 강요하는 것이다. 그들과 우리 사이엔 광대한 물리적 거리와, 그 사이를 이어 주는 가느다란 일방통행의 외줄만이 존재한다. 그 줄은 거미줄처럼 세계의 구석구석까지 뻗어 있어 수많은 사람들을 손아귀에 넣고 괴롭힐 수 있으나, 우리는 그들에게 어떠한 영향도 미칠 수가 없다. 우리는 그들에게 있어 보잘것없는 무력한 미물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텔레마케터들의 고충과 애환이 담긴 글을 볼 수 있었다. 이런 글을 읽어 보면 텔레마케터들에게 동정이 가지 않는 바는 아니지만, 잠을 설치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노라면 나는 그 자들을 도저히 용서할 수가 없다. 그래도 죄는 미워해도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고, 텔레마케터들도 고용난에 허덕이는 이 사회의 피해자들이니, 나처럼 텔레마케터들에게 살의를 품지 말고, 바다 같은 인내심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일까? 이렇게 생각해 보면, 고용을 창출하지도 않으면서 사람을 귀찮게 하는 데는 똑같은 효과를 발휘하는, 자동 응답 광고 전화를 구사하는 기업들이야말로 악마 중의 대마왕이라 할 수 있겠다.

 만일 다음 선거 때 시끄럽게 선거 유세를 하지 않으며, 광고 전화를 모조리 때려잡겠다는 후보가 나타난다면, 나는 아마 그 사람을 찍을 것이다.


Posted by 크리스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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