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마다 소지의 추리 소설을 처음 읽은 건 군대에서였는데 그놈의 군대얘기, 그때 읽은 게 <점성술 살인사건>이었다. 그 동안 읽은 추리 소설들은 <셜록 홈즈> 전집, 아가사 크리스티의 작품과 아르센 뤼팽 시리즈 일부 뿐이었는데, 이 작품들은 대부분 범죄를 해결하기 위한 주인공의 활약과 모험담, 범죄가 일어나는 배경에 흐르는 긴장감 등을 주로 묘사하고 있다. 그런데 <점성술 살인사건>은 이런 작품들과는 크게 다르게 느껴졌는데, 무엇보다도 '스토리'가 없다. 뭔 소리냐면, 앞서 예로 든 작품들은 주인공 탐정이 단서를 찾고 범죄를 해결하기 위해 이리 뛰고 저리 뛰고 때로는 치고받고 하는 모험담이라든가, 고립된 공간에서 사람들이 하나둘 죽어 나감으로써 점점 긴장감이 고조되고 어쩌구 하는 이야기가 있는 반면, <점성술 살인사건>의 내용은 오직 '사건의 트릭을 푸는 것'에 집중되어 있다. 책의 앞쪽 절반쯤은 탐정과 조수가 몇십 년 전 일어난 미해결 사건의 자료를 놓고 방 안에서 떠드는 이야기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중후반에 조수가 나름대로 조사를 하며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부분이 나오지만, 오히려 이 부분은 작품의 군더더기라고 생각될 정도로 재미가 없고 사건 해결과도 관계가 없다. 결말부에 탐정은 놀라운 추리력을 발휘해 범인을 찾아내고, 자신의 추리를 설명한다. 그리고 짤막한 후일담이 나오고 끝.

이렇게 말하고 보면 엄청 재미없을 것 같지만, 그랬다면 내가 이 글을 쓰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점성술 살인사건>을 굉장히 재미있게 읽었고, 오직 '살인 사건의 트릭을 푸는 것' 만으로도 책이 재미있을 수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점성술 살인사건> 같은 이른바 '본격 추리소설'의 매력은 난해한 문제를 제시하여 독자의 지적 호기심을 자극하고, 마지막에 탐정이 사건의 트릭을 해결하는 기발하고도 치밀한 해답을 제시함으로써, 독자로 하여금 감동에 가까운 논리적 완결성을 느끼게 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 (그렇다고 <셜록 홈즈> 같은 류의 작품을 폄하하려는 것은 결코 아니다. <푸른 카벙클>이나 <마지막 인사> 같은 단편은 추리의 비중이 빈약하거나 아예 없다시피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무척 좋아한다.)


이번에 읽은 <기울어진 저택의 범죄>도 '살인 사건의 트릭을 푸는 것'이 중심이 되는 작품이다. 홋카이도의 외딴 저택을 배경으로 하며 저택의 파티에 초대받은 사람들이 하나둘 죽어나가는데, 소설은 저택의 구조, 살인 사건이 일어난 밀실, 당시의 상황과 알리바이 등을 묘사, 설명하는 내용이 대부분으로, 군더더기 없이 독자에게 '살인 사건'이라는 문제를 제시하며 '어디 한 번 풀어 보시지?' 하고 말할 뿐이다. 물론 나 같은 평범한 독자는 풀 수 있을 리가 없으니(...) 이런 독자는 결말부에 제시되는 탐정의 추리를 듣고 그제서야 모든 것이 하나로 연결되어 '아 ㅅㅂ 그렇구나!' 라고 외치며 무릎을 치게 된다.




추리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재미있게 읽을 수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점성술 살인사건>을 더 높이 쳐 주고 싶다. <기울어진 저택의 범죄>는 (살짝 내용 누설) 피해자의 다잉 메시지가 특정 지식이 없으면 아예 풀 수 없고, 피해자가 옆으로 누워 자는 버릇이 있었거나 잠버릇이 고약해서 이리저리 뒹구는 사람이었다면 범행이 불가능했을 것 -_- 이라는 문제가 있고 해서... 그리고 두 작품에 등장하는 탐정과 조수 콤비의 첫 만남을 다룬 <이방의 기사>라는 작품도 있는데, 이건 두 사람의 우정과 사랑을 소재로 한 이야기라 다른 작품들에 비해 꽤 낭만적인 분위기였다.

Posted by 크리스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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