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제는 <크눌프 : 크눌프의 삶 속 세 가지 이야기 (Knulp : Drei Geschichten aus dem Leben Knulps)> 라 카더라.


주인공 크눌프는 떠돌이 니트(...)이다. 집도 가족도 없이 떠돌며, 밝은 성품과 여러 재주로 만나는 사람들을 즐겁게 해 주는 매력의 소유자이다. 이렇게 말하면 대책없이 행복한 사람 같지만, 그러나 그는 어렸을 때 첫사랑에게 배신당한 아픈 추억 때문에 어느 누구와도 깊은 관계를 갖지 못하기에 떠돌이의 삶을 사는 것이다. 그는 많은 친구들을 사귀고, 소녀들과 즐거운 축제를 보내기도 하나, 그는 항상 타인과의 관계에 선을 긋고 거리를 두는, 고독한 사람이다.

크눌프를 만나는 사람들은 그에 대해 다양한 반응을 보인다. 친구들은 크눌프가 가진 다양한 재능이 아무런 목적 없는 방랑 속에 낭비되는 것을 아쉬워하기도 하고, 그에게 가정을 이루라든가, 무언가 가치 있는 일에 그의 능력을 발휘해 보라는 충고를 하기도 한다. 또는 직업을 갖고 한 곳에 뿌리박고 사는 사람들은 그의 방랑벽에 이해할 수 없다는 시선을 보내기도 하고, 때로는 그의 자유롭고 무의미한 삶에 질투 섞인 멸시를 보인다.

크눌프는 방랑의 끝에 병에 걸려 숲 속 길을 헤매이다 하느님과 대면한다. 그는 자신의 삶이 첫사랑에게 배신당한 이후로 망가져 버렸으며, 자신의 삶이 무의미했음을 외친다. 그러나 하느님은 크눌프가 행복했던 시간들을, 떄로는 남에게 상처를 주기도 했지만, 대신 세상의 많은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나누어 주었음을, 모든 것이 바르게 되었으니 한탄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일깨워 준다. 크눌프는 편안히 잠든다.


분량이 굉장히 짧은 작품이다(세 단편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다 합쳐서 130페이지 정도이다). 깊은 분석을 요구하기보다는 한 편의 우화를 읽듯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작품이라 생각된다.

해설부에 헤세의 편지가 인용되는데, 작품 감상에 도움이 되는 내용 같아서 여기에도 옮긴다.

... 나는 작가의 과제가 자신의 독자에게 인생과 인간에 대한 규범을 제시해 주어야 한다거나, 그가 전능하고 권위적이어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네. ... 크눌프와 같은 인물들은 나에겐 매우 매혹적이네. 그들은 <유용하지는> 않지만 많은 유용한 사람들처럼 해를 끼치지는 않지. 그들을 심판하는 것은 나의 일이 아닐세.
 오히려 나는 이렇게 생각하네. 크눌프와 같이 재능 있고 생명력 충만한 사람들이 우리의 세계 안에서 자리를 찾지 못한다면 이 세계는 크눌프와 마찬가지로 그에 대한 책임이 있다고. 또한 내가 독자들에게 충고하고 싶은 게 있다면 그것은 사람들을 사랑하라는 것, 연약한 사람들, 쓸모없는 사람들까지도 사랑하고 그들을 판단하지 말라는 것일세.

결국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모든 삶은 가치있는 것임을, 심지어 타인들 또는 자신에게도 무의미해 보이는 삶이라 할지라도, 모든 것이 선하고 바르게 이루어졌다면 그 삶은 가치있는 삶이라는 것이 아닐까 싶다.

Posted by 크리스Φ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