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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외모를 가진 도리언 그레이라는 청년이 자신의 초상화에 의해 영원한 젊음을 갖게 되고, 미와 쾌락을 추구하다 파멸하는 과정을 그린 소설이다. 당시 유행하던 유미주의적 예술관을 바탕으로 한 작품이라는데, 책 뒤의 해설에서도 지적하듯 고도의 유미주의 까기(...)를 주제로 하는 소설이란 느낌이다.


도리언 그레이는 화가 바질의 모델이 되어 자신의 초상화를 그리게 되고, 바질의 화실에서 바질의 친구인 헨리 경을 만난다. 헨리 경의 중2병 냄새가 물씬 풍기는(...) 염세적, 쾌락주의적 세계관에 매료된 도리언 그레이는 완성된 자신의 초상화를 보고선 '자신은 늙고 추해질 텐데 이 초상의 아름다움은 영원히 지속될 것'이라는 자뻑슬픔에 휩싸여, 자신의 아름다움이 영원하길 바라는 충동에 '나의 젊음이 영원히 계속되고, 늙고 추해지는 건 이 초상이 되도록 할 수만 있다면 내 영혼이라도 팔겠다!'고 외친다.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도리언 그레이는 자신이 사랑하던 사람에게 모진 말을 퍼붓고 집에 돌아오자 초상화가 추하고 사악한 모습으로 변해 있는 것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란다. 그는 초상을 숨기고 자신의 행동을 후회하지만, 다음날 연인이 자살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그러나 도리언 그레이는 자신이 슬픔을 느끼기는 커녕 이 사건이 자신과는 동떨어진 비현실 속의 비극 같다고 느끼고 있음을 꺠닫게 되고, 이를 계기로 본격적으로 중2병 테크 인생의 미와 쾌락을 추구하게 된다.

도리언 그레이는 영원한 젊음을 통해 자신의 아름다움을 유지하게 되고, 헨리 경의 철학을 추종하여 쾌락을 즐기며 중2병의 힘으로 많은 사람들을 유혹하고 그들을 타락시킨다. 이러한 도리언의 모습을 쾌락주의자인 헨리 경은 '그는 삶 자체를 예술로 승화하였다'라며 만족스럽게 지켜보지만, 헨리와 달리 현실을 초월한 추상적이고 지고한 아름다움을 추구하던 바질은 도리언의 흑화변모를 안타까워한다. 그러나 도리언은 현실의 미와 쾌락을 추구하던 자신과 대립되는 바질을 싫어하며 피하게 되고, 시간이 지나 자신과 초상의 비밀을 알게 되고 그에게 참회를 종용하는 바질을 순간적인 증오로 살해하고 만다.


결말부에서 도리언 그레이는 자신의 타락을 실체화하는 초상을 보며 괴로워하다 '과거를 죽이고 자유로워지리라'는 생각으로 초상을 찢으려 하지만, 비명 소리를 듣고 달려온 사람들이 발견한 것은 예전의 아름다운 모습으로 돌아간 초상화와 쭈글쭈글한 노인의 시체였다. 일체의 도덕 관념을 초월하여 아름다움과 쾌락만 추구하던 도리언 그레이가 결국엔 자신이 깔보던 도덕적 고뇌에 의해 무너지고, 그의 진정한 모습을 보여 줌으로써 그가 버린 양심을 상징하던 초상을 찢어 버리려다 도리어 자신이 죽게 되는 것은 '인간은 천부적으로 지니고 있는 도덕과 양심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 '도덕과 양심을 포기하는 것은 인간이기를 포기하는 것'임을 보여 주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또한 도리언은 나름 작은 선행(솔까말 선행이라고 하기도 힘든 자기도취적 행동)을 하고선 초상이 아름답던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왔기를 기대하고 초상을 보지만, 초상은 오히려 음흉하고 위선적인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이를 통해 양심을 이미 버린 도리언 그레이에게 있어서 선행이란 단지 허영심, 호기심, 위선에서 나온 행동일 뿐이라는 것을, 양심에서 우러나오지 않은 선행은 선이 아님을 말하려는 것이라 느껴진다.


읽으면서 전에 감상을 썼던 <뱀파이어와의 인터뷰>의 레스타와 도리언 그레이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둘 다 영원한 젊음을 누리면서 나름의 철학에 따라 미와 쾌락을 추구하고, 그러다 종막에는 후회와 회한으로 무너지는 모습이라든가... 다만 <뱀파이어와의 인터뷰>에서 뱀파이어들은 살기 위해서 악을 행해야만 하고, 그 과정에서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기 위한 수단으로써 미와 쾌락을 옹호하는 반면, 도리언 그레이는 자신의 의지로 도덕과 양심을 버리고 젊음과 쾌락을 택했다는 것이 차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래서인지 결말부의 레스타에겐 동정이 느껴지지만, 도리언 그레이의 경우 '이거 완전 ILL HY HL 네'스러운 감정이 느껴지는 것 같다.


작품 초중반엔 헨리 경 등 등장인물들이 온갖 궤변을 늘어놓으며 중2병 허세력 배틀(...)을 벌이는 장면이 많아서 좀 지루한 면이 있다. 중후반에 들어서 도리언 그레이의 파멸이 시작되는 부분부터는 꽤 속도감이 붙지만... 초중반의 장광설을 온전히 이해하려면 당시 예술 사조나 사회 분위기에 대한 배경 지식이 필요할 듯하다. 난 아무래도 등장인물들처럼 '미와 쾌락은 도덕을 초월한다'는 극단적인 가치관에 공감이 안 되는지라, 이런 대화가 나오는 대목에서는 읽으면서 '님들 허세 쩝니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번역도 너무 직역투의 문장이 많아서 좀 딱딱했다. 전체적으로 내 취향은 아니었던 작품.

Posted by 크리스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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