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제는 <아비시니아의 왕자 라셀라스의 이야기(The History of Rasselas, Prince of Abyssinia)>라고 한다. 왕자 라셀라스가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가를 찾기 위해 여행하며 행복에 이르는 방법을 탐구하는, 우화 같은 분위기의 짧은 소설이다.

줄거리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하기 위한 방법을 찾던 주인공이



를 깨닫게 된다는 내용.


'행복의 골짜기'에 살고 있던 라셀라스 왕자는 부족함 없지만 지루한 삶 속에서 자신이 행복을 느끼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고 동생 네카야 공주와 시녀 페쿠아, 현자 이믈락과 함께 '행복의 골짜기'를 탈출하여 진정한 행복에 이르는 방법을 알아내기 위해 여행하며 많은 사람들과 만난다. 그러나 언뜻 보기에 행복해 보이는 사람들도 전부 불행과 무지에 빠져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완전한 행복을 누리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 절대적 행복에 이를 수 있는 길은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일행은 행복해질 수 있는 각자의 인생 구상(그것이 이루어질 수 없음을 알면서도)을 꿈꾸며 고국으로 돌아간다.




계몽주의가 유행하던 18세기에 쓰인 작품이라 그런지, 이성과 합리성을 추구함으로써 진리에 이를 수 있다는 낙관적 태도가 라셀라스의 대사에 자주 나타난다. 그러나 결국에는 이러한 바람이 헛된 것임을 깨닫는 모습에서 '인생무상'이라는 동양적 철학이 보이는 듯했다. 밑에서 말할 불교 이야기도 그렇고... 사람 생각하는 건 어디서나 똑같은 건가?


작가가 어머니의 임종을 앞두고 쓴 작품이라는데, 진정한 행복에 이른 줄 알았던 현자가 딸의 죽음 앞에 나약히 무너지는 모습이나, 마지막에 지하 묘지의 미라들을 보며 나누는 대화 등에서 인간의 유한성과 죽음이 행복을 가로막는 큰 벽이라는 생각을 느낄 수 있었다. 유한한 수명을 가진 인간에게 상실은 피할 수 없는 것이고, 그렇기에 완전한 행복은 존재할 수 없는 것이라는 안타까운 결론에 이르게 된다.


죽음은 삶의 반대편 극단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일부로서 존재하고 있다.

 - 무라카미 하루키, <상실의 시대> 中                    ('상실의 시대'란 제목은 정말 폭풍간지 초월번역인 것 같다.)


읽으면서 왠지 불교적 허무주의가 연상되는 작품이었다. 행복을 얻을 수 있는 보편적, 절대적인 길을 찾으며, 그토록 바라던 길을 찾았다는 희망에 들뜨고선 번번이 그 희망이 신기루로 사라짐에 실망하는 라셀라스의 모습에서 '존재하지 않는 현세의 행복을 찾으려는 집착을 벗어던지고 온갖 번뇌에서 해탈하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불교 이야기를 하니깐, 예전에 고등학교 과학 선생님께서 하셨던 이야기가 생각난다.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대략 이랬다.

내가 천 길 낭떠러지 절벽에 나뭇가지 한 가닥을 붙잡고 매달려 있다. 낭떠러지 위에는 호랑이가 기다리고 있고, 낭떠러지 밑에는 뱀이 득시글거린다. 게다가 잡고 있는 나뭇가지는 곧 부러지려 하는데, 나는 나뭇가지 끝에 달린 벌집에서 꿀이 한 방울씩 떨어지는 것을 받아마시며 버티고 있다. 어떻게 해야 할까?
답은 '꿈에서 깨라!'                       (이거 분명히 뭔가 원본이 되는 이야기가 있을 듯한데, 영 찾지 못하겠다.)

인간은 번잡한 노동과 우연적 불행의 풍랑에서 벗어날 수 없는 존재인 것일까? 인간은 결코 완전한 지고의 행복에 이르지 못하고, 온갖 괴로움과 불행 속에서 한두 방울씩 떨어지는 작은 행복에 의지하며 살아야 하는 것일까? 이러한 행복해지려는 헛된 욕망을 버리고 해탈하여 어떠한 행, 불행에도 동요하지 않는 초월자가 되어야 하는 것일까? 그렇다면, 인간의 궁극적인 이상이 무(無)라면, 인간은 왜 존재하는 것인가?



아니면 내가 너무 큰 것을 바라는 건가? 인생사의 작은 행복에 만족할 줄 알아야지, 완전하고 절대적인 행복과 같은 이상을 꿈꾸는 것은 과분한 것일까? 작품에서 지적한 것처럼, '인간은 항상 자신이 불행하다고 느끼기 때문'에, 인간의 옥망이 무한하기 때문에 이런 고뇌가 생겨나는 것일까? 욕망을 조금 줄이는 것으로써 행복해질 수 있는 것일까? 그렇다면 인간을 습격하는 노동, 질병, 재난 등의 불행은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가?

나는 그냥 작고 소박한 행복에 만족하며 풍랑을 가슴속에 묻고 살아가야겠다(...)

그리고 책 뒤의 역자 해설이 무척 충실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대부분의 해설에서 보이는 뜬구름 잡는 이야기, 당연한 이야기, 적절히 얼버무리는 이야기가 아니라 작품에 대한 역자 나름의 분석과 감상이 담겨 있어서 정말로 작품 이해에 도움이 되는 글이고, 작품에 대한 역자의 애정이 느껴지는 듯했다.


분량도 짧고 읽기 쉬운 작품이지만, 읽고 나면 우울한 기분이 드는 작품(...) 행복이 무엇인지 고민해 보고 싶은 사람이라면 추천할 만한 작품이다.

Posted by 크리스Φ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