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신화나 전설에 대한 심상(image)이 인간의 무의식 속에 잠재되어 있으며, 이러한 심상이 신비한 숲의 오라(aura)에 의해 주변 인간의 무의식 속에서 끄집어져 실체화된다는 설정의 작품이다. 제목의 '미사고(Mythago)'는 신화(myth)와 심상(라틴어로 imago)의 합성어로, 실체화된 신화, 전설상의 인물이나 건축물 등을 의미한다.

영국을 무대로 고대의 켈트 족, 색슨 족, 로마 인들의 싸움 속에서 형성된 신화와 전설이 작품의 주요 배경이 되며, 사랑하는 사람을 구하기 위해 숲 속으로 들어간 주인공이 고대 전설의 미사고들을 만나면서 자신의 여정이 이미 예언되어 있음을 알게 되고, 예언을 따라가며 그 자신이 전설의 일부분이 되는 과정은 하나의 신화를 읽는 듯한 느낌을 준다. 그리고 침입자를 방해하는 미궁의 숲으로 상징되는 집단 무의식 등 정신분석학과 관계된 상징이나, 영국을 침략한 로마의 기독교와 대비되는 켈트 족의 원시 종교 풍습 등 종교적 대립, 주인공의 이야기에서 볼 수 있는, 부자와 형제 간의 대결 구도나 신비스러운 장애물과 조력자들 등의 신화적 클리셰 등 여러 가지 상징이 작품 속에 배치되어 있는데, 개인적인 느낌으로는 이런 각각의 상징들이 어떤 통일적인 주제로의 연결을 이루지는 못한 것 같다. 많은 상징들이 일관되고 뚜렷한 주제 없이 각자 따로 노는 느낌이랄까. 굳이 주제를 꼽자면 <'신화'라는 이야기의 원형이 되는 사건이 어떤 역사적 상황, 자연 환경 속에서 형성되고, 그 원형의 구성 요소들이 여러 상징적 이미지로 치환되며 후대에 전승되어 '집단 무의식'의 일부가 되는 과정>을 소설을 통하여 보여 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렇게나 현학적인 주제라니. 그렇다면 작가가 이 작품을 통해 말하려고 하는 것은 그저 정신분석학 이론이 주장하는 바를 재탕하는 것 뿐이었을까? (나는 정신분석학에 전혀 관심이 없기 때문에, 내가 무식해서 작품 이해를 못 한 것일 가능성도 물론 있다.)

그래도 주인공의 여정을 통해 볼 수 있는, 현재와 과거, 그리고 더 먼 과거가 뒤섞이는 숲 속의 시간이나, 여러 시대에 등장하는 다양한 미사고의 모습에 대한 묘사나, 숲 깊숙이 들어가며 점점 과거의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며 결국 과거의 신화가 되어 버리는 과정은 독자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환상 소설로의 가치를 보여 준다고 할 수 있겠다. 그리고 새드 엔딩으로 끝나지만 언젠가는 해피 엔딩이 이루어질 것임을 암시하는 짤막한 전설로 결말을 마무리짓는 것은 무척 아름다운 느낌이었다.


2. 사실 이 책을 읽게 된 동기는 <카페 알파>의 '미사고' 때문이다. 일본어로 '미사고'는 '물수리'를 뜻하기는 하지만, 어쩌면 작가가 이 책의 오마주로 '미사고'라는 이름을 지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카페 알파>의 미사고는 숲 속의 물가에서 물고기를 잡아먹으며 생활하고 있으며, 어른은 싫어하지만 아이들을 좋아해서 이따금 아이들 앞에 모습을 드러내기도 한다. 날카로운 이 때문에 아이들은 미사고를 보면 겁을 먹지만, 아이들을 보며 웃기도 하고, 비를 맞은 타카히로를 도와 주거나 멀리 숨어서 선물로 게(...)를 던져 주기도 하는 등 선한 성격을 가진 듯하다. 나이를 먹지 않고 옛날부터 지금까지 그대로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으며, 로봇이 만들어지기 이전부터 존재했다고 한다.

만약 이 미사고가 미사고(mythago)라고 가정하면, 나이를 먹지 않고 숲에서 살고 있는 것이나 어른들 앞에 나타나지 않는 것이 설명된다. <미사고의 숲>의 설정에 따르면, 미사고는 신비한 힘을 가진 숲에서 생성되며 혹시 죽더라도 재생성될 수 있고, 머릿속에 많은 다른 이미지가 들어 있는 성인보다는 아이들의 무의식이 미사고를 생성하는 데 유리하다는 언급이 있는데, 이러한 점을 반영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미사고가 형성되기 위해서는 사람들의 무의식에 그에 관한 전설이 존재해야 하는데, <카페 알파>의 미사고에 대한 전설은 어떻게 형성된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 생간다. <카페 알파>에서는 지구의 해수면이 점차 상승하여 많은 땅이 물에 잠기고 있는데, 이렇게 물이 많아지는 환경 속에서 '물가에 사는 사람'에 대한 전설이 생겨나고, 이 전설에 의해 미사고가 생성된 것이 아닐까 한다. <미사고의 숲>에서도 2차 대전 중의 귀환병에 대한 전설에서 생성된 미사고가 등장하는 걸 봐선, 단기간에 형성된 전설에서도 미사고가 만들어질 수 있는 듯하다.

또는 <미사고의 숲>에서 시간이 뒤섞이면서 현재의 존재가 과거의 신화가 되었다는 점을 볼 때, 미래의 존재가 현재의 신화가 될 수도 있다고 추측할 수 있다. 그렇다면 미사고가 미래의 존재이며, 어떠한 과정을 통해 현재의 전설에 편입되어 형성되었다는 가설도 세울 수 있는데, 그럼 미사고는 '물로 뒤덮인 지구에 적응한 새로운 인류의 형태'일 수도 있지 않을까? 이러한 시간 여행 가설을 확장하여, 그렇게 따지면 '타폰'도 미래의 존재에서 유래한 미사고일까? '타폰'에 타고 있는 알파는 '의사 선생님이 과거에 연구한 알파'가 아니라 '주인공 알파'의 미래 모습이거나, 그에서 유래한 미사고인 것은 아닐까?



다른 관점에서, <미사고의 숲>에서 주인공의 아버지는 미사고 '귀네스'를 사랑하게 되는데, 아버지가 죽은 후 주인공과 형도 귀네스를 사랑하게 된다. 이렇게 귀네스-아버지-주인공 형제의 구도를 <카페 알파>의 미사고-아야세-타카히로로 치환할 수도 있겠다. <카페 알파>에서 아야세와 타카히로는 대립하지는 않지만, 다른 세대의 인물들이 같은 존재를 사모한다는 점은 일치한다. <카페 알파>의 작가는 이러한 변용을 통해 작품의 주제 중 하나인 '시간의 흐름'을 보여 주려 했던 것 아닐까.

그리고 이전에 <카페 알파>의 감상을 쓰면서 인간 모양의 버섯, 가로등 모양의 식물 등을 언급하며 '인류의 기억을 지구가 형체화한다'는 면에서 <솔라리스>를 연상시킨다는 말을 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솔라리스>가 아니라 <미사고의 숲>에서 따온 게 아닌가 싶다. (어쩌면 둘 다일 수도?)

물론 작가가 <미사고의 숲>의 오마주로서 '미사고'를 만든 것인지도 확실치 않고, 단순히 이름만 따 오고 세부 설정 같은 건 신경쓰지 않았을 가능성도 있기 때문에 이런 식으로 추측해 봤자 설정놀음(...)에 불과하긴 하다. 그래도 이런 식으로 이리저리 생각해 보는 게 작품을 재미있게 읽는 방법 아닐까.


P.S. 그 동안은 전역하기 전 읽은 책들만 썼는데, 이게 첫 '전역한 후 읽은 책' 감상이다(...)

Posted by 크리스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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