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8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대표작이다. 눈 쌓인 온천 마을을 배경으로, 무위도식하는 한량 시마무라와 게이샤 일을 하는 고마코의 사랑을 그리고 있다. 뚜렷한 줄거리나 갈등 관계는 없지만, 간결하고 아름다운 문체와 묘사로 분위기와 이야기를 이끌어 간다.


작품에서 주인공이자 관찰자 역할을 하는 시마무라는 경제적 고민 없이 무위도식하며 간간이 서양 무용에 대한 평론을 쓰는 사람이다. 그런데 이 평론이란 것이, 자기는 서
양 무용을 실제로 본 적도 없으면서 다만 외국에서 온 사진이나 글만을 보고 서양 무용이란 것이 어떨지 상상하며 쓰는 것이다. 결국 실제로 아무 뜻도 없는 공허한 글을 써대는 것에 불과하다. 시마무라의 이 직업이 그의 성격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그는 세상에 찌들어 타락한, 열정이 없고 무의미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여행지에서 고마코를 만난다. 그는 고마코를 처음 보고서 그녀의 순수한 모습에 놀란다. 고마코는 시마무라를 사랑하게 되고, 시마무라는 고마코의 정열적이며 대가를 바라지 않는 사랑, 순수한 삶의 모습을 보게 된다.

고마코와 시마무라의 사랑은 불륜, 좋게 말하면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다. 그래서 시마무라는 고마코에게 깊이 정들지 않으려 하지만, 고마코는 자신의 모든 것을 시마무라에게 전하려는 듯 그에게 가까이 다가간다. 그가 묵는 여관방에 아침부터 놀러 오고, 소소한 자기 주변 이야기를 해 주고, 자기가 세들어 사는 방을 보여 주고, 때로는 술에 취해서는 시마무라와 언젠가는 헤어질 것임에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여 주기도 한다. 이렇게 시마무라는 고마코에 대해 알아가고, 고마코가 샤미센 선생님의 아들의 병간호를 위해 게이샤가 되었다는 것도 알게 된다. 시마무라는 자신을 대가 없이 사랑하며 작은 마을에서 열심히 살아가는 고마코를 보며 순수함과 허무함을 느낀다.

이 '순수함'과 '허무함'에서 느껴지는 아름다움이 작품 전체를 감싸고 있다. 고마코가 언젠가 헤어져야 함을 알면서도 시마무라를 사랑하는 모습은 순수하고도 허무하며, 고마코가 취미삼아 읽은 책들을 아무도 보지 않을 공책에 기록하는 것도 순수하고도 허무하며, 가망 없는 환자의 병간호를 위해 게이샤로 일하는 것도 순수하고도 허무하고 그렇기 때문에 아름답다. 이런 고마코의 행동들을 시마무라는 '헛수고'라고 평하면서도, 이런 점 때문에 고마코를 순수하고 아름다운 존재로 느낀다.


또한 작품에 등장하는 수많은 소재들이 '순수'와 '허무'를 상징한다. 가장 대표적인 '눈'만 해도 하얗고 깨끗한 아름다운 존재지만, 언젠가는 녹아 없어질 덧없는 존재이다.



그리고 아름다운 색깔의 나방들이 날아다니다 얼마 못 가 죽어 바스라지는 모습, 얼음을 깨며 노는 아이들의 모습, 서정적이고 외로운 분위기를 자아내는 풍경 묘사 등 작품 내의 모든 것이 순수와 허무에서 오는 아름다움을 보여 주는 장치라고 할 수 있다.


이 작품은 순수와 허무의 미를 전달하기 위하여 간결하고 압축적인 문체를 구사한다. 첫 문장이 대표적이다.

 접경의 긴 터널을 빠져 나오면 바로 눈의 고장, 즉 설국이었다. 밤의 밑바닥이 환해졌다. 기차는 신호소 앞에서 멈추었다.


단 세 개의 짧은 문장들로 작가는 어두운 밤하늘 아래 서 있는 신호소의 불빛이 쌓인 눈을 하얗게 비추는 정경을 아름답게 묘사하는 것이다. 그리고 다음에 이어지는, 기차 안에서 남자의 병간호를 하는 요코의 모습이 눈 쌓인 저녁 노을이 보이는 차창에 투명하게 반사되는 정경도 순수하고 투명한 아름다움을 잘 보여 주고 있다. 그리고 앞에서도 말한 수많은 상징적 장치가 있어, 작품의 모든 것이 '순수'와 '허무'라는 작품의 주제와 연결된다. 개인적으로 한 부분을 꼽자면,

 승객은 쓸쓸할 정도로 적었다.
 쉰이 넘은 듯한 사나이와 얼굴이 유난히도 붉은 처녀가 마주앉아 무엇인가 끊임없이 이야기를 하고 있을 뿐이었다. ... 먼 여행길에 오른 사람들처럼 보였으나 그게 아니었다. 제사 공장의 굴뚝이 있는 역에 닿자, 나이 지긋한 사내는 황급히 선반에서 짐을 내려 창 밖으로 던지며, "그럼 인연 있으면 또 만나자고" 하고 처녀에게 작별 인사를 남긴 채 차에서 내렸다.
 시마무라는 순간 눈물이 쏟아질 것만 같아 제 스스로 놀랐다. 그로 인해 자신이 여자와 헤어지고 돌아가는 길이란 것을 더욱 절실히 느낄 수 있었다.
 우연히 한 차를 같이 탄 두 사람인 줄을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었다. 사내는 행상인이거나 무슨 그런 사람 같았다.


여행지에서 돌아오는 시마무라가 기찻간에서 본 모습이다. 시마무라와 고마코가 서로 아무리 사랑한들 그들은 그저 우연히 인연이라는 기차의 같은 칸에 탔을 뿐이며, 결국에는 헤어지고 다른 길로 떠나서는 이리저리 떠돌다 연기처럼 사라질 것임을, 그야말로 '인생무상'을 너무나도 아름답게 보여 준다.


그리고 내가 읽은 번역본의 번역이 왠지 포스가 느껴져서(...) 나중에 알고 보니 교수 신문에서 '좋은 고전 번역'으로 선정된 번역이었다. 일본어는 한국어와 비슷한 점이 많아서 어떻게 번역해도 웬만해선 중간은 가기 때문에(...) 번역의 차이를 잘 느끼지 못하는데, 이 번역은 작품 특유의 분위기를 잘 전달해 준다는 느낌이다. 이건 정말 말로는 설명 못하겠고, 직접 읽어봐야 안다(...)


분량이 짧지만 한 편의 시를 읽는 느낌으로 감상할 수 있는 작품. 정말 문장 하나하나에서 서정적인 아름다움과 깊은 감정과 폭풍간지(...)를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Posted by 크리스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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