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명의 영화로도 유명한 작품이다. 18세기 말에 태어난 뱀파이어가 기자와 인터뷰를 하며 자신의 삶을 회고하는 형식의 소설로, 요즘 장르소설에서 많이 쓰이는 '고뇌하는 뱀파이어'의 원조 격인 작품. 요즘 나오는 뱀파이어들은 낮에도 막 돌아다니고 사람을 죽이고 싶지 않다며 피를 안 먹고 버티는 종족도 있는데, 이 작품의 뱀파이어는 그런 거 업ㅂ는 정통파 뱀파이어다. 햇빛을 받으면 타 죽으며 낮에는 관에 들어가 자야 하고, 매일 사람을 죽이고 피를 마셔야 하는 하드코어한 조건 속에서 살아야 한다. 이 작품은 뱀파이어가 되어 사람을 죽여야 하는 삶을 살며 도덕적인 고뇌를 느낀 주인공이 뱀파이어의 존재 의미를 탐구하는 과정이 주된 내용이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이 작품에서 뱀파이어가 살기 위해서는 매일 밤 누군가를 죽여야 한다. 착한 뱀파이어라고 해서 사람을 안 죽이고 참고 그런 건 없다. 사람을 죽이거나 아니면 자기가 굶어 죽거나, 둘 중 하나다.


이런 조건이다 보니 뱀파이어들은 사람을 죽이는 행위에 대한 자신들 나름의 관점을 갖게 된다. 육식동물이 다른 동물을 잡아먹듯, 사람을 죽이고 흡혈하는 것을 자연스럽게 여기는 뱀파이어도 있고, 사람을 죽이는 것에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뱀파이어도 있고, 흡혈을 통해 느낄 수 있는 쾌락을 옹호하며 미학적인 논리로 흡혈을 합리화하기도 하고, 그냥 아무 생각 없는 양아치 뱀파이어도 있고.

그리고 뱀파이어들은 햇빛을 보지 못한다. 햇빛을 쬐면 타 버리기 때문에, 낮에는 관에 들어가 자야 한다. 그래서 뱀파이어들이 보는 풍경은 밤의 풍경뿐이다. 그들의 눈에 바다는 푸른빛이 아니다. 그저 검은색으로 보일 뿐이다.

게다가 이들은 영생 불멸의 존재들이다. 영원히 산다는 게 좋을지도 모르지만, 뱀파이어에게 영생이란 햇빛을 보지 못하고 사람 피를 빨아먹는 짓을 영원히 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이런 생활을 수십, 수백년간 계속 하려니 뱀파이어는 보통 인간과 다르게 세상을 바라보기 마련이다. 뱀파이어는 '거리감(detachment)'을 느낀다. 세상에 대한 무관심 내지는 달관이라고 할까. 늙지도 죽지도 않는 뱀파이어들은 나이를 먹고 늙다가 몇십 년 후에 죽어 버리는 인간을 보며, 자신과는 상관없이 흐르고 바뀌는 세월과 세계를 보며 자신은 이들과 동떨어진 존재임을 깨닫게 되고 '거리감'을 갖게 된다. 어떤 뱀파이어들은 자신이 인간이던 시절의 세상과 지금의 변해가는 세상의 차이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미쳐 버리기도 한다. 이것이 나이든 뱀파이어들의 '죽음'이 되기도 한다.


주인공이자 뱀파이어인 루이스는 이와 같이 저주받은 삶을 사는 자신 같은 뱀파이어도 신에 의해 어떠한 목적을 갖고 창조된 것이라 믿고, 자신의 존재 의미를 찾는다.

주인공 루이스는 18세기 말 미국 뉴올리언스의 농장주였는데, 동생의 죽음이 자신의 탓이라는 죄책감을 느끼며 죽고 싶다는 생각에 빠져 지내다가 뱀파이어 레스타에 의해 죽지 않는 존재가 되고 만다. 매일 사람을 죽이는 삶을 살며, 루이스는 뱀파이어라는 존재에 대한 의문을 갖게 된다. 이웃 농장의 여주인에게 정체를 숨기고 도움을 주기도 했지만, 그녀가 그의 정체를 알게 되자 돌아온 것은 '꺼져 버려, 사탄아!'라는 저주의 말. 이 사건으로 루이스는 '자신은 결코 선한 존재가 될 수 없는가'라는 물음을 갖게 되고, 생전에 가톨릭 신자였던 그는 '뱀파이어가 존재한다는 것은 신이 어떠한 목적을 위해 뱀파이어를 창조했기 때문'이라는 추측을 하여 뱀파이어의 탄생에 대해 알고 있는 다른 오래된 뱀파이어를 찾기 시작한다. 루이스는 유럽을 여행하다 파리의 뱀파이어 집단을 만나고, 지도자인 뱀파이어 아르망에게 '내가 아는 한 400년을 산 자신이 가장 오래된 뱀파이어이며, 어떤 뱀파이어도 신이나 악마를 만난 적이 없다'라는 말을 듣게 된다. 이 말을 들은 루이스는 뱀파이어가 얼마나 하찮은 존재인가를, 그리고 모든 것에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절망하게 된다. 그리고 딸이자 연인과도 같았던 뱀파이어 클라우디아의 죽음으로 비탄에 빠진 루이스는 그동안의 탐구를 포기하고, 자신이 악하고 그릇된 존재임을 인정하고 살아가게 된다. 그는 자신이 선을 행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스스로 죽는 것뿐이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이러한 고뇌에서 오는 고통을 물리치기 위해 사악함과 냉정함을 받아들이고 깊은 '거리감'에 빠져 살아간다. (루이스가 자살을 선택하지 못하는 것은 그가 생전에 가톨릭 신자였던 것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이외에도 다른 뱀파이어들의 생각도 자주 묘사되어 루이스와 대조를 이룬다. 삶의 태도에 있어 루이스와 가장 크게 대립하는 레스타는 일견 쾌락만 좇는 망나니처럼 보이지만, 그 역시 '악은 관점의 차이일 뿐'이라는 나름의 철학에 입각하여 악을 행하며 쾌락을 추구한다. 그러다 결말부에서 그는 자신이 과거에 저지른 행동에 대한 죄책감과,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바뀌어 가는 세상에 대한 공포심으로 폐인이 되어 버린다. 그리고 루이스에게 묻는다. '자네는 어떻게 견딜 수 있는 거지?' 아마도 루이스는 오랜 고뇌 끝에 자신의 자아를 버리고 그 자리에 사악함과 냉정함을 받아들였기에 세계에 거리감을 느끼며 살아갈 수 있는 반면, 레스타는 자신의 강한 자아를 포기하지 못했기에 세계와 충돌하다 결국 패배한 것이 아닐까 한다.

그리고 루이스와 레스타에 의해 어린 나이에 뱀파이어가 된 클라우디아는 인간으로 지냈던 시간이 짧기에 인간으로서의 감정이 희박하며, 성장하지 않는 자신의 외모를 저주하며 자신을 이렇게 만든 루이스에게 애증을 느낀다. 오래된 뱀파이어인 아르망은 거리감에 사로잡혀 지내다가 뱀파이어의 존재에 대해 탐구하는 루이스의 정열을 흠모하여 그를 따르게 되나, 루이스 역시 클라우디아의 죽음과 존재 탐구의 좌절로 거리감에 사로잡히면서 정열이 사라지고, 아르망은 그와 논쟁을 벌인 후 헤어지게 된다.


뱀파이어에 대한 공포나 뱀파이어들의 싸움보다는, 영원히 사람을 죽이며 어둠 속에서 살아야 하는 뱀파이어의 성질을 소재로 한 깊은 사색이 느껴지는 작품이다. 다만 <뱀파이어 연대기>라는 타이틀로 이 작품의 후속작이 여럿 나왔는데, 본작의 뱀파이어의 의미에 대한 탐구를 감명깊게 읽은 독자라면 읽지 않는 것이 정신건강상 좋다. 전작의 중요한 설정들을 후속작에서 뒤집어엎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루이스와 대립되는, 악의 상징이었던 레스타가 2부 <뱀파이어 레스타>의 주인공으로 등장하는데, '나 사실 피 빨 때 나쁜 놈들만 골라서 죽였음. 나 착한 놈임 ㅋㅋㅋ' 해 버리는 바람에 전작의 선악 대립은 안드로메다로 날아가게 된다.


그리고 천 년 단위로 묵은 오래된 뱀파이어가 등장해 버려서(뱀파이어의 탄생이 고대 이집트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아르망의 400년 얘기를 듣고 '고작 400년밖에 안 되는 역사를 가진 뱀파이어라는 존재에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라고 외치던, 뱀파이어의 근원을 찾던 루이스의 절망은 한낱 개소리에 불과한 것이 되어 버렸다.


그 외에도 전작에서 아르망의 키에 대한 묘사가 없었다는 점을 이용해, 후속작에서는 아르망을 쇼타키 작은 미소년으로 만들어 버리는 등 다분히 특정 취향을 겨냥한 듯한 설정 등, 전작의 고뇌하는 폭풍간지 뱀파이어는 사라지고 그냥 뱀파이어 모험기로 바뀌어 버리는 바람에 전작의 주인공이 느꼈던 고뇌와 절망은 훼이크의미없는 것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 한마디로...

훼이크다 이 ㅄ들아!



그리고 내가 읽은 여울판의 경우 초반부에 바로 보이는 오역이 하나 있다. 뱀파이어가 인터뷰하러 온 기자와 마주앉아 전등을 켜고 자기 얼굴을 보여주자 기자가 '아이, 참.' 이라고 하는데, 여기서 왜 이런 맥빠지는 대사가 나오나 싶어 찾아보니 원문은 'Dear God!' 이었다. 그러니까 뱀파이어의 존재를 믿지 않는 기자가 그냥 자기가 뱀파이어라고 믿는 미친 놈이겠거니 하고 인터뷰를 하러 갔는데, 뱀파이어가 자기의 창백한 얼굴을 보여 주자 '어이쿠 ㅅㅂ 진짜잖아!' 하며 놀라는 장면에서 외치는 말을 '아이, 참.'으로 번역한 것이다(...) 다행히 이번에 새로 나온 판본에서는 '세상에...'로 수정되어 나왔다. 여울판을 번역했던 역자 분이 전체적으로 교정을 보고 다시 내놓은 듯하다. (인터넷 서점 미리보기로 좀 읽어 봤는데, 루이스의 말투가 좀 딱딱해진 듯? 사실 몇백 년을 산 뱀파이어다 보니 말투가 딱딱한 것이 어울릴지도 모르겠다.) 그 외에도 레스타(Lestat), 아르망(Armand)은 프랑스어 발음에 따라 표기했는데, 루이(Louis), 클로디아(Claudia)는 '루이스', '클라우디아'로 표기한 것도 지적할 수 있겠다. 개인적으로 '루이스', '클라우디아'라는 이름이 더 맘에 들긴 하지만(...)


소설로서의 재미도 있고, 뱀파이어의 존재 의미에 대한 탐구 등 '개념'도 갖추고 있는 장르문학의 수작. 그러나 2부 <뱀파이어 레스타>에서는 재미를 위해 개념을 희생하고, 3부 <저주받은 자들의 여왕>은 개념과 재미, 두 마리의 토끼를 다 놓친 소설(...)이 되어 버렸다. 그래서 난 3부까지만 읽고 포기했다 -_- 여하간 1부 <뱀파이어와의 인터뷰>는 추천할 만한 작품.

Posted by 크리스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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