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bert Hollander가 영역한 지옥편.)


 대학 3학년 때 교양 강의로 <지옥편>을 한 학기 동안 영역본으로 읽는 수업을 들은 적이 있다. 그 때 위의 책으로 수업을 받았는데, 문학 작품을 영어로 읽는 것도 처음이고, 문학 작품에 대한 강의를 듣는 것도 처음이었다. 그러다 보니 아무래도 작품에 대한 기억이 많이 남았고, 읽은 지 꽤 오래 지났지만 블로그 첫 게시물로 선정하게 되었다.


 내용을 요약해 보면, 단테가 정신을 차려 보니 웬 어두운 숲 속에 떨궈져 있고, 태양빛을 찾아 헤매다 표범, 사자, 암늑대 3종 세트(...)를 만나 도망치던 중 로마의 시인 베르길리우스의 영혼을 만난다. 베르길리우스는 단테가 사랑했던 베아트리체가 단테를 구하기 위해 자신을 보냈다고 하면서, 단테의 길잡이가 되어 지옥과 연옥을 지나 천국으로 안내한다. 연옥의 마지막에서 단테는 천국에서 온 베아트리체를 만나고, 이번에는 베아트리체의 안내를 받아 천국을 여행한다... 는 것이다. 간단히 말해서 단테의 지옥, 연옥, 천국 여행기라고 할 수 있겠다. 형식은 서사시, 즉 시 형식이며 소설을 여러 장(章)으로 나누듯 <신곡>은 곡(canto)으로 나누어져 있고, 지옥편 34곡, 연옥, 천국편 각 33곡, 총 100곡이다.
 

 위에서 말했듯 내용은 지옥, 연옥, 천국의 세 부분으로 나눠지고, 이 중 <지옥편>은 단테가 어두운 숲 속에서 지옥을 거쳐 연옥 입구에 도착하기까지의 부분이다. 지옥편에는 지옥의 구조가 아주 디테일하게 묘사되어 있고(지옥의 구조를 설명한 그림도 인터넷에 많이 있다) 각각의 죄에 대해 그 죄에 걸맞는 그럴싸한(...) 형벌이 마련되어 있다. 단테는 지옥을 여행하며 많은 죄인들을 만나고 그들이 받는 형벌을 보며 죄인들과 베르길리우스와 대화하며 죄인들의 생전의 삶과 벌에 대해 이야기한다.


 유명한 작품이니 설명은 여기까지 하고, 내 느낌을 정리해 보면...
 

1. 죄와 속죄
 
 단테가 지옥, 연옥을 거쳐 천국으로 간다는 것은 죄를 지은 자(단테)가 벌을 받고(지옥) 속죄의 과정을 거쳐(연옥) 용서와 구원을 받는다(천국)는 것, 즉 속죄의 과정을 비유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지옥에서는 수많은 죄인들을 죄에 따라 나누어 형벌을 지우고 있다. 지옥편은 단테가 지옥을 여행하며 만나는 많은 죄인들과 베르길리우스와 대화하고, 죄와 벌에 대해 독자에게 이야기하며 생각하게 하는, 위에서 말한 속죄의 과정 중 첫 부분이 된다. 자신이 어떤 죄를 지었는가, 그 죄가 어떠한 결과를 가져오는가를 아는 것이 속죄에 이르기 위한 첫 단계라는 것을 말한다고 할까. 지옥편의 첫 구절을 보면

Nel mezzo del cammin di nostra vita    Midway in the journey of our life
mi ritrovai per una selva oscura,         I came to myself in a dark wood,
ché la diritta via era smarrita.              for the straight way was lost.

첫 줄에서는 우리 삶(our life)이라고 말하면서 두번째 줄에서는 나(I came to...)로 주어가 바뀌어 있다. 이렇게 ‘우리’와 ‘나’를 동시에 말함으로써 <신곡>의 첫머리에서 이 글은 단테 자신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독자에게도, 나아가 인간 모두에게 해당되는 것이라는 것을, 즉 모든 인간들의 죄와 속죄를 말하고자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2. 베아트리체

 단테는 자신이 사랑했던(이게 단테 혼자만의 짝사랑이었다고도 하고, 아예 베아트리체가 가상의 인물이었다는 설도 있지만 어쨌든) 베아트리체를 천국의 안내자로 묘사한다. 이를 두고 교수님이 ‘단테는 아무도 시도하지 않은 독창적인 방법으로 연인에 대한 사랑을 표현했다’ 고 하셨다. 베아트리체를 천국의 안내자로 묘사함으로써 베아트리체는 천국에 갈 만큼 아름답고 선한 사람이라는 것을 표현하는 동시에, 단테 자신이 죄를 짓게 되어도 베아트리체는 자신을 구원해 줄 것이라는 믿음을 보여 주고 있으며, 또한 지옥과 연옥을 거친 단테가 천국에 도착하여 누리는 환희를 베아트리체와 함께 나누겠다는 것 등등 단테의 수많은 감정이 이 설정 하나에 응축되어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참 간지나는 부분이다(...).


3. 서양 기독교적 관점의 세계관

 아무래도 기독교적 세계관을 배경으로 하는 작품인지라 등장하는 죄 중에 기독교 교리와 관련된 것들이 많고(대표적으로 자살이라던가), 지금 관점에서 보기에 영 좋지 않은 대목도 좀 있다. 예를 들어 그리스도 이전 시대에 태어나 세례를 받지 않은 사람들은 싸그리 지옥의 Limbo라는 구역으로 간다. 따라서 베르길리우스는 물론, 아리스토텔레스나 호메로스 같은 고대 그리스인들은 전부 여기 있고, 선한 이교도들(대표적 인물로 이슬람의 살라딘이 나온다.)도 이곳에 있다. Limbo에 있는 죄인들은 특별한 벌을 받지는 않지만, 어쨌든 죄인으로 분류되니까 찝찝하긴 하다. 그리고 ‘분열을 조장한 자’들이 벌을 받는 곳이 있는데, 여기에는 이슬람교 창시자 마호메트가 있다(...).

 이런 내용들이 있어서 <신곡>을 ‘기독교 찌라시’라고 평가하는 사람도 있는데, 강의하신 교수님도 작품의 기독교적 세계관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신곡>을 기독교 홍보물이라고 치부할 수도 있겠지만 그러기에는 이 작품이 너무나 아깝다’ 라는 말씀을 하셨다. 내 생각도 그렇다. 엄청나게 많은 내용을 담고 있는 작품인데 단순히 기독교 얘기가 나온다고 과민반응하기에는 아까운 작품이란 생각이 든다. 아, 물론 나는 기독교인이 아니다. -_-


4. 한국어 번역본과 영어 번역본 비교

 사실 이 글을 쓰게 된 이유 중 가장 큰 것이 이거다.
 (무언가를 까는 것은 역시 재미있는 법이다.)

 <지옥편> 을 배운 후 군대에서(의경으로 중대 행정반에서 근무했었다) <연옥편>과 <천국편>을 읽으려고 <신곡> 한국어 번역본(열X책들 출판)을 읽었는데, 주석의 양이 영어판과 비교해 볼 때 너무 부실했다. 번역 자체의 질이야 내가 이탈리아어를 모르니 말할 수 없지만, 주석에 관해서는 영어 번역본에 있는데 한국어 번역본에는 없는 것이 많았고, 있는 주석도 거의 고유명사 뜻풀이 뿐이었다. 

 예를 몇 개 들면, 영어판에는 첫 구절(Midway in the journey of our life...)에 '이 구절은 성경의 Isaiah 38:10에서 따 온 듯하며', ‘서양의 서사시들은 도입부를 [ ~ 의 한가운데에서]로 시작하는 전통이 있다’는 것 등의 해설이 덧붙여져 있으며, 

 또한 단테의 길을 막는 표범, 사자, 암늑대가 한국어판 주석에는 ‘음란, 오만, 탐욕’을 상징한다고 나와 있는데, 영어판 주석에는 (1)‘음란, 오만, 탐욕’ 외에도 (2)‘시기, 오만, 탐욕’이라는 설, (3)‘incontinence(무절제. 즉 음란, 탐욕 등), malice(악의. 여기서는 폭력을 말함), mad brutishness(여기서는 사기, 배신을 말함)’이라는 설, (4)‘피렌체의 단테의 정적(政敵)’을 상징한다는 정치적 해석 등 다양한 해석을 제시하고 있다. 

 그리고 Canto 20에서(내가 Canto 20을 설명 발표했었기 때문에 이 부분에는 빠삭하다(...)) 예언으로 사람들을 현혹한 예언자들이 벌을 받는 곳에서 단테가 베르길리우스에게 벌을 받고 있는 마녀 Manto에 대해 묻는데, 베르길리우스는 Manto가 늪 한가운데의 땅에서 살다 죽었으며, Manto를 피해 도망쳤던 사람들이 그녀가 죽은 후 돌아와 Mantua라는 도시를 세웠고, 이곳이 베르길리우스 자신의 고향이라는 설명과 함께 단테에게 자신의 고향에 대한 다른 설명을 듣거든 거짓말이라 생각하라고 말해 주는 대목이 있다(이 부분이 작품 내에서 베르길리우스가 가장 길게 말하는 부분이라 한다). 한국어판에는 여기서 Manto에 대한 설명만 주석에 달고 넘어갔는데, 이 대목에는 놀라운 비밀이 있다. 

 베르길리우스의 서사시 <아이네이스>에는 Manto의 아들이 Mantua를 세웠다는, 위 내용과 모순되는 내용이 있다(!!). 그런데 이렇게 되면 베르길리우스는 Manto의 아들이 세운 도시에서 태어났으니 Manto의 후손이 되고, 따라서 Manto의 예언 능력을 물려받았을 가능성이 생기는 것이다(...). 그래서 단테가 베르길리우스로 하여금 자신의 작품 속 내용과 다른 설명을 함으로써 Manto의 후손이 아닌 다른 사람들이 Mantua를 세운 것으로 만들었고, 따라서 베르길리우스가 예언 능력을 가졌을 가능성을 없애 버린 것이 된다.



이러한 단테의 하이 개그를 영어판에서는 주석으로 설명해 놓았는데, 한국어판에서는 묻혔다(...). 

 그 외에도 단테가 사탄의 팔 크기를 Canto 31의 거인과 자신의 키에 비교해서 설명하는 부분이 있는데, 영어판 번역자는 이걸 가지고 사탄의 크기가 약 2000피트라고 계산해서 주석을 달아 놓았다(...). 이런 자잘하고 재미있는 주석이 한국어판에는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강의 첫 시간에 교수님이 한국어 번역을 놔두고 굳이 영어 번역으로 수업하는 이유가 ‘서양은 700년간 단테를 연구해서 방대한 자료가 축적되어 있는데, 한국에는 아직 그런 것이 부족하다’라고 하셨는데, 한국어 번역본을 읽으면서 많이 실감했다. 교수님이 주석의 다양한 내용을 언급하시면서 ‘이런 주석들을 참고하면서 어떤 내용이 숨겨져 있는지 알아보는 것도 책을 재미있게 읽는 방법이다’ 라는 말씀을 하셨는데, 한국어판에 주석이 부족하다 보니 영어판에 비해 내용 이해가 잘 되지 않고 지루하게 느껴진 것 같다(내가 군대에 있는 동안 머리가 굳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_-). 

 그리고 주석 말고 아쉬운 부분으로, 이탈리아 어 원문을 읽어 보면 각 행끼리 각운이 맞는다. 몇 구절을 보면 – 

Nel mezzo del cammin di nostra vita (A)
mi ritrovai per una selva oscura, (B)
ché la diritta via era smarrita. (A)

Ahi quanto a dir qual era è cosa dura (B)
esta selva selvaggia e aspra e forte (C)
che nel pensier rinova la paura! (B)

Tant' è amara che poco è più morte; (C)
ma per trattar del ben ch'i' vi trovai, (D)
dirò de l'altre cose ch'i' v'ho scorte. (C) ...

즉 각 연의 첫 행과 끝 행의 라임이 맞고, 가운데 행과 다음 연의 첫 행, 마지막 행의 라임이 맞는다.영어판에서는 한쪽에 원문을 수록해 놓아 독자들이 이탈리아 어를 모르더라도 보면서 라임을 맞춰 발음해 본다든지 ‘오 존나 짱인데!’ 하고 놀란다든지 할 수 있는데, 한국어판에는 원문이 없어서 무척 아쉬웠다. 

 이상 너무 한국어판을 깠는데(...), 아직 한국에서는 단테 번역이 그다지 많지 않으니 앞으로 고전을 찾는 독자들이 많아지고, 고전 번역도 활성화되면 더 훌륭한 책이 나오지 않을까 기대한다. 언제쯤이면 그렇게 될런지는 알 수 없지만...


P.S. 오랜만에 글을 쓰려니 레포트 쓰는 기분이다(...)


 

Posted by 크리스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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