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고 - 찰스 디킨스, <두 도시 이야기> (이기석 옮김, 어문각)


예전에 읽은 <두 도시 이야기>가 알고 보니 축약본이었던 터라 아쉬웠는데, 요번에 펭귄클래식과 더클래식 출판사에서 <두 도시 이야기>를 완역해 출간했다. 뮤지컬 <두 도시 이야기>와 영화 <다크 나이트 라이즈> 덕분인 것 같다(...)

인터넷에서 번역에 대한 평을 보니 펭귄클래식 판은 좀 딱딱하다 하고, 게다가 마지막 장면의 독백이 존댓말로 시작해서 반말로 끝난다는 비보를 들어서 (다행히 2쇄에서 고쳐졌다 카더라) 더클래식 판을 골랐다. 더클래식의 번역을 맡은 '바른번역' 이란 조직의 특성상 여러 사람이 공동으로 번역한다는 말은 들었는데, 편집을 잘 하는지 꽤 괜찮은 퀄리티를 뽑는다길래 믿고 질러 보았다.


감상은 전에 썼으니 제끼고... 읽어 보니, 번역 퀄리티는 무난했는데 고유명사 표기가 좀 미묘했다. 일단 비교를 위해 아래에 원문, 어문각 번역, 더클래식 번역 순으로 써 보았다.

Sydney Carton - 시드니 카턴 - 시드니 칼튼
Charles Darnay - 샤를 다네 - 찰스 다네이
Lucie Manette - 뤼시 마네트 - 루시 마네뜨
Ernest Defarge - 에르네스트 드파르주 - 어네스트 드파르지
Evrémonde - 에브레몽드 - 에버몽드

일단 'Carton' 이 '카턴' 이냐 '칼튼' 이냐는 좀 애매한 듯싶다. 나는 처음에 '카턴' 으로 읽었으니 카턴이 익숙하지만, 그렇다고 칼튼이 딱히 틀렸다고까지 할 순 없을 것 같고... 그리고 'Charles Darnay' 의 경우 프랑스어 식으로 읽으면 어문각 판처럼 '샤를 다네' 겠지만, 이 사람이 영국에서 살고 있으니 영어식으로 '찰스 다네이' 로 읽어 주는 것도 나름 일리가 있지 싶다 (아놀드 슈워제네거처럼?). 그런데 그렇게 영어식으로 읽을 거면 '뤼시 마네트' 도 '루시 마네트' 로 쓸 것이지, 왜 영어도 아니고 불어도 아니고 어중간하게 '루시 마네' 라고 쓴 것인가? 그리고 '에르네스트 드파르주' 는 빼도 박도 못할 프랑스인인데 또 왜 이름을 영어식으로 읽어서 '어네스트 드파르지' 라고 쓴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외래어 표기법을 찾아보니 (참고) 불어의 t 는 ㄸ가 아닌 'ㅌ' 로 표기하고, 어말의 ge 는 '주' 로 표기한다고 하던데.

그리고 Evrémonde를 '에버몽드' 로 쓴 것도 도통 이유를 모르겠다. 한 학기 배운 야매(...) 프랑스어 지식이긴 하지만, 악센트가 붙은 e는 'ㅔ'로 발음된다고 배웠고, 인터넷으로 찾아본 네이티브 스피커 발음도 분명히 '에브레몽드'다. 인터넷으로 검색하면서 é 가 씹혀서 e 가 된 것 같지만 넘어가자

좀 찾아보니, 뮤지컬 <두 도시 이야기>에서도 고유명사 표기를 전부 저렇게 해 놨더라. 아무래도 뮤지컬을 본 사람이 원작 소설을 볼 때 위화감이 들지 않도록 이렇게 옮겨 놓은 것 같다. 그러면 뮤지컬 번역자를 까야 하는 것인가...

그리고 영어 공부를 하라는 건지 친절하게도(?) 영문판을 덤으로 주는데, 여기에는 Evrémonde의 악센트가 빠져 Evremonde로 인쇄되어 있다. 예전에 영어 공부할 겸 사 놓고 읽지는 않은 펭귄 클래식 영문판에는 제대로 Evrémonde로 인쇄되어 있던데... 프랑스어 선생님이, 악센트도 철자의 일부라서 빼먹으면 안 된다고, 길거리에 나붙은 'Cafe' 라는 간판도 엄밀히 따지자면 싸그리 틀린 거라고 하셨던 기억이 난다.


(역시 <카페 알파>는 명작이다.)

또 솔로몬(Solomon)을 '살러먼' 이라고 옮겨 놨던데... 요즘 신문에서 '리어나르도 디캐프리오', '니컬러스 케이지' 같은 표기를 몇 번 봐서 그런지 더 따질 기운도 안 난다. 외래어 표기법의 존재 이유는 원어 발음을 정확히 따기 위해서가 아니라 표기의 통일을 위해서라고 들었는데, 굳이 저렇게까지 혀를 꼬아야 하는 건지 모르겠다. 영어의 특성상 발음이 문자와 많이 다르다곤 하지만, 어차피 한글로 외국어 발음을 완전 정확히 따는 건 불가능한 만큼, 직관적으로 알기 쉽고 익숙한 표기를 따라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 곧 오렌지도 '아륀지' 로 쓸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그 외에도 맞춤법과 띄어쓰기 오류, 오타, 비문, 사소한 오역 들이 가끔 눈에 밟혔다. 가령 '접시를 놓여 있었다' 라든가 당신을 범인입니다, '칼부림이 일어나지 않을 것 같지 않자' 라든가...


완역본인 덕분에 예전에 읽었던 어문각 판에는 잘린 좋은 구절들을 발견하는 것도 꿀재미였다 (예컨대 후반부에 제리 크런처가 기도하는 아내를 구박했던 걸 뉘우치는 훈훈한 장면이나). 그래도 구관이 명관이라고, 문장 면에서는 어문각 판이 더 낫다는 생각도 들었다. 어문각 판 역자님의 필력이 워낙에 쩔었던지라... 더클래식 판도 읽기에 큰 문제는 없었고, 주석도 제법 신경쓴 데다 완역판이라는 장점도 있지만, 아무래도 예전 판본의 포스에 비해 문장력 간지가 좀 딸리는 것 같아 아쉽다. 이래서 '오래된 것이 가장 뛰어나다' 라고 하는 것인가(...) 개인적으로 무척 좋아하는 작품이라서, 앞으로도 더욱 나아진 번역판이 계속 나와 주었으면 싶다.


Posted by 크리스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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