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고전의 반열에 올라선, 우리 세대의 명작 <드래곤 볼>에 등장하는 지구의 구세주 미스터 사탄. 그는 '싸우지 않고 이긴다'는 무도武道의 궁극을 몸소 실현한 위대한 무술가라고 할 수 있다. 이 글에서는 미스터 사탄의 전투력을 정량적으로 분석해 보고자 한다. 본 논고가 참고할 텍스트는 시리즈의 정경Canon 이라 할 수 있는 만화 <드래곤 볼> (전 42권) 로, 2차적인 자료를 배제하고 오직 원작 작품 내에서 언급되는 정보만을 판단의 기준으로 삼을 것이다.


 미스터 사탄의 정확한 전투력을 밝히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작품 내에서 인물들의 전투력 비교는, 대부분의 경우 정확한 수치가 아닌 모호한 표현을 통해 제시되기 때문이다. 인물들의 전투력을 수치로써 제시하는 경우는 사이어인 침공과 프리더전에서 스카우터를 사용하는 부분, 그리고 마인 부우를 부활시키고자 에너지를 모으는 극히 짧은 부분뿐이다. 그러나 미스터 사탄의 전투력이 수치적으로 언급된 곳이 단 한 부분 있으니, 바로 손오공이 귀걸이를 미스터 사탄에게 던지려 하는 장면이다.


토리야마 아키라, 아이큐점프 편집부 번역, 드래곤 볼. 서울: 서울문화사, 2002, vol.42, p.8.

 이 부분에서 주인공 손오공은, 자신의 전투력을 1000이라 했을 때 미스터 사탄의 전투력은 1이라 평가하고 있다. 즉 미스터 사탄의 전투력은 손오공의 1/1000 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이 때의 손오공의 전투력이 얼마인가를 알아내면 미스터 사탄의 전투력을 계산할 수 있겠다. 이 시점에서 손오공의 전투력은 3000키리 (초사이어인 상태) 임을 바비디가 측정하였으나, 전투력의 단위로 '키리'가 사용된 것이 이 때가 유일하기 때문에 비교 대상이 없다는 난점이 있다 (유일한 비교 대상은 800키리의 야콩 뿐이나, 작중 야콩은 손오공 이외의 다른 인물과 싸운 적이 없다). 그러므로 비교 가능한 전투력 수치를 알아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과거의 시점으로 돌아가야만 한다.



Ibid., vol.25, p.114.

 이에 따르면 프리더의 1차 변신 후 전투력은 1백만 이상 (스카우터 기준) 임을 알 수 있다. 이 장면 이후로는 전투력 수치가 언급되는 부분이 없기 때문에 함부로 판단할 수 없으니, 섣부른 추측을 배제하면 완전체 프리더를 쓰러뜨린 이 시기의 손오공의 전투력은 최소한 1백만 이상이라는 결론을 얻는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이것은 최소값이다). 따라서 프리더전 이후 손오공의 수련과 성장을 고려하지 않고, 마인 부우 전에서의 손오공의 전투력을 최소값인 1백만이라고 가정하여 계산하면 미스터 사탄의 전투력은 1백만 x 1/1000 = 1000 이라는 결론을 얻게 된다.


 이 1000이라는 수치가 과연 어느 정도의 전투력인지를 알고자 한다면 좀 더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라데츠와 손오공, 피콜로의 전투 장면을 되새겨 보면 좋은 비교 대상을 얻을 수 있다.


Ibid., vol.17, p.127.

 이 장면을 통해, 라데츠와의 전투가 있었던 시점에서 손오공의 전투력이 최대 1000 안팎이었음을 알 수 있다. 즉 미스터 사탄의 전투력 1000은 라데츠와 싸우던 청년기의 손오공과 동급인 것이다. 이 시기 이전의 손오공의 활약을 고려한다면, 미스터 사탄의 전투력이 세계 정복을 노리던 피콜로 대마왕을 발라 버릴 수 있는 수준이라 판단하는 것은 무리가 아닐 것이다. 만일 미스터 사탄이 조금만 일찍 태어났더라면 분명 그는 피콜로 대마왕의 마수로부터 세계를 구했으리라.

 게다가 이 수치는 어디까지나 최소값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만일 마인 부우 전의 손오공이 프리더전 시점의 자신보다 다섯 배 성장했다면, 미스터 사탄의 전투력 역시 다섯 배 증가한 5000으로 산정되고, 이는 전투력 1330의 마관광살포를 얻어맞고 골로 간 라데츠를 한큐에 보낼 수 있으며, 또한 크리링, 손오반, 피콜로가 함께 덤벼도 이기지 못한 공포의 대상으로 묘사되었던 내퍼를 바짝 쫄아붙게 만들 수 있는 전투력이다.


Ibid., vol.19, p.81.

 그리고 앞서 기준으로 삼았던 것이 프리더의 1차 변신 상태이니, 프리더의 2, 3차 변신에 의한 전투력 증가까지 감안한다면 이 수치는 더욱 상승할 여지가 남아 있다. 예컨대 프리더의 완전체 변신에 의한 전투력 증가가 2~4배, 손오공의 성장을 5~10배 정도라 과감히 추측하면 미스터 사탄의 전투력은 최소값의 약 20배인, 무려 20000에 육박한다. 베지터가 지구를 침공했을 때 손오공이 계왕권을 사용하여 얻은 전투력이 21000을 넘었고, 이 때의 손오공은 베지터를 압도하였으므로, 20000 정도의 전투력이라면 미스터 사탄은 내퍼를 털고 베지터와 혈전을 벌일 수 있다.


Ibid., vol.20, p.25.


 이에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은 미스터 사탄의 실력을 과소평가하고 있다. 그 이유 중의 하나는 미스터 사탄이 싸웠던 상대들이 지나치게 강했기 때문이라 사료된다. 우리는 전투력 42000의 나메크인 네일조차 전투력 53만의 변신 전 프리더에게 왼손만으로 처참히 굴욕당한 것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작중 미스터 사탄과 주먹을 나눈 인물들은 완전체 셀, 어린 트랭크스, 18호 등이 있는데, 이들 전부 프리더 따위를 떡실신시킬 수 있는 실력을 갖고 있음이 자명하므로, 미스터 사탄은 단지 상대를 잘못 만났을 따름이라 하겠다. 그가 과거의 손오공, 크리링 등과 겨뤘더라면 독자들은 그의 진면목을 깨달을 수 있었을 것이다. 총으로 무장한 살인마 둘을 맨손으로 때려잡고, 셀과 부우 등에게 얻어맞고도 약간의 고통만을 호소할 뿐인 그의 실력을 상기해 보자.

 또한 미스터 사탄이 기의 사용법을 익히지 못했다는 것도 그가 과소평가받는 이유가 될 것이다. 작품 내의 주요 등장인물들은 무천도사, 신, 계왕 등 고명한 스승들에게 사사한 인물들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유일한 예외는 베지터이나, 베지터는 지구인이 아니니 논외로 하자). 그러나 미스터 사탄은 마땅한 스승 없이 이 정도 경지까지 오른 것이다. 만일 미스터 사탄이 무천도사를 만나 그에게 기의 사용법을 가르침받았더라면, 미스터 사탄은 크리링, 야무치, 천진반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당대 최강의 인간이 되었을 가능성도 농후하다. 크리링과 야무치 역시 미숙하던 시절엔 에네르기파도 무공술도 구사하지 못하였지 않은가. 게다가 미스터 사탄의 핏줄인 딸 비델이 손오반에게 받은 짧은 트레이닝만으로 자유롭게 하늘을 날 수 있게 되었음을 떠올린다면, 미스터 사탄 역시 범상치 않은 잠재력을 갖춘 인재임이 틀림없다.


Ibid., vol.36, p.132.


 요컨대 미스터 사탄은 시대를 잘못 타고났으며, 또한 그의 재능을 꽃피워줄 스승을 만나지 못한 탓에 많은 이들에게 인정받지 못한 비운의 무술가인 것이다. 이러한 재능을 갖고 있음에도 그는 힘만이 능사가 아님을 깨달아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경지에 도달한, 진정으로 강한 무술가라 불리기에 부족함이 없다고 하겠다.


Ibid., vol.41, p.43.



P.S. 어째서 난데없이 이런 걸 쓰게 됐는지 모르겠다. 이게 웬 잉여짓(...)


Posted by 크리스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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