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제가 체스를 처음 배웠던 초등학교 시절의 기억을 바탕으로 쓰는 글입니다. 그 때 저나 친구들이 잘 몰랐던 점들을 떠올려서 초보자들이 헷갈릴 만한 것들을 짚어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외에 초보자들께 가르쳐 드리고 싶은 쉬운 내용들을 쓰겠습니다.


1. 어느 말이 가장 쎈가요? or 룩, 나이트, 비숍 중 누가 더 쎈가요?

체스에서 말의 가치는 다음과 같이 추산됩니다. 폰 하나를 1점이라고 하면

나이트 - 3점.    비숍 - 3점.    룩 - 5점.    퀸 - 9점.

이에 따르면 퀸이 가장 세고, 나이트와 비숍보다 룩이 더 셉니다. 나이트와 비숍 중 누가 더 세냐는 질문을 하는 분도 계실 수 있는데... 나이트와 비숍의 우열은 용호상박, 난형난제(...) 어느 쪽이 더 세다고 하기 힘듭니다. 그저 '상황에 따라 다르다' 는 말밖에 할 수 없습니다. 나이트는 비숍에 비해 질럿단거리 공격을 하는 대신 말을 뛰어넘을 수 있기 때문에 말들이 서로 복잡하게 엉킨 상황에서 유용하고, 비숍은 드래군장거리 공격 능력이 있는 대신 같은 색 칸으로만 이동할 수 있다는 단점이 있어, 길을 막는 말들이 없어 장거리 저격공격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상황에서 유용합니다.

참고로 체스판에 킹, 퀸 또는 룩, 상대 킹만 남아 있는 경우 체크메이트를 만들 수 있습니다. 이렇게 단독으로(정확히는 킹의 도움이 필요하지만) 체크메이트를 만들 수 있는 퀸과 룩을 주기물(major piece)이라고 하고, 단독으로 체크메이트가 불가능한 나이트와 비숍을 부기물(minor piece)이라고도 합니다.


2. 비숍끼리는 서로 못 잡나요?

제가 처음에 친구에게 이런 소릴 들었을 때 '이새퀴 뭔 소리야' 라고 생각했습니다. 장기의 포包도 아니고, 비숍끼리 못 잡는다는 소리는 금시초문이었습니다. 나중에 생각해 보니, 이렇게 된 것 같더군요.

전에 얘기했다시피, 비숍은 같은 색깔 칸으로만 이동합니다. 그래서 이 얘기를 하면서 '비숍이 서로 다른 색의 칸 위에 있으면 서로 못 잡는다' 는 걸 보여드렸지요. 그런데 이 얘기가, 동네 문방구에서 파는 몇천원짜리 체스세트에 든 설명서에도 있었습니다. 친구가 이걸 보고선, 앞 내용은 잘라먹고 '비숍이 서로 다른 색의 칸 위에 있으면 서로 못 잡는다' 로 알아듣고선 이런 소릴 한 것 같더군요.

혹시 비슷한 착각을 하실 분이 계실까 봐 말씀드리지만, 장기의 포包처럼 서로 못 잡는 말은 체스에는 없습니다. 위에서 말한 '서로 다른 색의 칸 위에 있는 비숍'의 경우, 못 잡는다는 규칙이 있는 게 아니라 '잡을래야 잡을 수가 없는' 상황인 것입니다.


3. 체크를 했는데 상대가 안 피했습니다. 이 때 킹을 잡으면 제가 이기나요?

체스의 목적은 '체크메이트를 만드는 것'입니다. 킹을 잡는 게 아닙니다. 만일 체크를 했는데 상대가 안 피했다고 킹을 잡으면 그건 반칙이자 무례한 행동입니다. 체크를 했는데 상대가 안 피할 경우, 친구와의 시합이라면 한 대 때려주고(...) 다시 두도록 하고, 공식 시합일 경우 심판을 불러 조치를 취하도록 해야 합니다.

제가 초등학교 때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전에 설명했듯 처음 시작할 때 말 배치는 킹끼리 마주보고, 퀸끼리 마주보게 놓아야 합니다. 그런데 친구놈이 킹과 퀸을 반대로 놔서 킹과 퀸이 마주보는 배치가 되었습니다. 저는 그걸 눈치채지 못하고 게임을 했습니다. 그러다 중앙의 폰이 사라지고 상대 퀸이 내 킹을 공격하는 상태가 되었는데, 저는 당연히 그 자리에 있는 게 상대 퀸이 아니라 킹이라고 생각하고 다른 수를 두었습니다. 그러자 친구놈은 기다렸다는 듯이 퀸으로 킹을 잡고 쌩하니 가 버리더군요(...) '너 말 배치 잘못했음 네가 틀린 거임 섊' 이라고 말할 틈도 없이 가 버리니, 쫓아가서 패 주고 싶었습니다 -_-




4. 킹끼리 붙으면 무승부인가요?


아마도 초보자들이 잘못 알고 있는 지식 Best 1 이 아닐까 싶습니다(...) 저도 초등학교 때 게임이 불리해지면 비기려고 상대 킹을 향해 질주하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 거 없습니다. 애초에 킹끼리 붙을 수가 없습니다. 내 킹을 상대 킹에게 붙이는 것은 상대 킹의 공격 범위 안에 들어가는 것이므로, 스스로 체크를 당하는 수가 되어 규칙에 어긋납니다. 컴퓨터 체스 프로그램이 있으신 분은 한번 해 보세요. 붙을래야 붙을 수가 없습니다.


5. 둘 만한 수가 없는데, 한 수 쉬어도 되나요?

이번에도 그런 거 없습니다. 정말로 두려 해도 둘 수가 없는 게 아니라(이런 경우는 스테일메이트죠), 둘 수는 있는데 딱히 두고 싶지 않다고 해서 안 둘 수는 없습니다. 설사 뭔 수를 둬도 불리한 상황이라도 반드시 뭔가 둬야 합니다. 재미있는 예가 있습니다.

백 차례입니다. 백은 2수 안에 체크메이트를 만들 수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될까요? 한 번 생각해 보세요.

이렇게, 상대가 뭔 수를 두든 불리한 상황을 만들어서 상대가 나쁜 수를 둘 수밖에 없게 만드는 것을 '악수강요(Zugzwang, 독일어라서 '추크츠방' 이라 발음합니다)' 라고 합니다.


6. 룩을 꺼내려고 하는데, 장기에서처럼 룩 앞의 폰을 치운 후 꺼내면 되나요?



장기에서는 차車를 꺼내기 위해 차 앞의 졸을 한 칸 옆으로 움직인 후 차를 전진시켜 꺼내지요. 체스를 처음 두는 사람들은 대부분 장기에서 하듯 룩 앞의 폰을 두 칸 움직인 후 룩을 꺼내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수를 두는 건 둘 중 하나를 의미합니다. '나는 체스를 전혀 모른다' 아니면 '너 따위는 발로 둬도 관광보낼 수 있다' 입니다.

전에 캐슬링을 설명하면서 잠깐 말씀드렸지만, 체스는 중앙을 점령하는 것을 중요시합니다. 왜냐하면 구석에 있는 말보다 중앙에 배치된 말이 더 넓은 범위에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고, 따라서 공격에 유리해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체스의 처음 수들은 항상 중앙 점령을 위해 두어져야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구석의 폰을 움직이고 룩을 꺼내는 것은 시간 낭비입니다. 이런 수를 두는 동안 상대는 폰, 나이트, 비숍을 중앙으로 진출시킬 겁니다. 그러면 룩이 나와 봤자 얘네들에게 다굴당해 죽기 십상입니다. 퀸 다음으로 강한 말인데, 이렇게 허무하게 날리기엔 아깝죠.

처음에는 중앙의 폰을 전진시키고 나이트와 비숍을 진출시킨 후, 룩은 나이트와 비숍이 나가고 비워진 진영 뒷줄에 배치하여 시즈탱크지원 사격을 하며 기회를 봐 전진시키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이렇게 '초반에 어떤 말을 어떻게 움직일 것인가' 에 대한 것을 '오프닝(Opening)' 이라고 합니다. 체스에는 수많은 오프닝이 연구, 분석되어 있습니다. 몇 가지만 예를 들어 보여드리겠습니다.

 쥬오코 피아노(Giuoco Piano), 이탈리아어로 '조용한 게임' 이라 한다는군요.

프렌치 디펜스(French Defence) 입니다.

킹스 인디언 디펜스(King's Indian Defence) 입니다.

시실리안 디펜스(Sicilian Defence) 中 'Dragon Variation'이라는 변화수입니다.

보시다시피 모두 말들이 중앙을 향해 배치되어 있습니다. 체스를 진지하게 공부하려는 분이 아니라 그냥 재미로 즐기려 하는 분이라면 이런 걸 알 필요는 없지만, 적어도 '체스는 중앙을 점령하는 것이 중요하다' 는 것을 기억해 주셨으면 합니다.


여기까지 오셨으면 체스를 '두는' 것에는 문제가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체스를 '잘' 두려면 갈 길이 멀지요(...) 체스를 잘 두려면 전술(Tactics), 오프닝(Opening), 엔드게임(Endgame), 전략(Strategy)과 입지전(Positional Play) 등에 대해 공부해야 합니다. 저도 그닥 잘 두는 편이 아닌데다, 여러 포털 사이트의 체스 카페나 사이트에 이런 내용이 잘 나와 있기 때문에 더 알고 싶으신 분은 그쪽을 찾아보시는 것이 좋을 것 같네요. 일단 글을 쓰기 시작한 이상 위의 것들을 간략하게나마 쓸 예정이지만, 하루에 글 두 개를 뱉어내느라 진이 빠져서(...) 좀 쉬었다 나중에 쓰겠습니다.

P.S. 이번에도 틀린 점이나 궁금한 점 있으면 댓글 달아 주세요.

Posted by 크리스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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